무법보다는 악법이 났다는 말이 있다. 이는 무법이 악법보다도 무섭기 때문이다. 헌데 우리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얼토당토않은 일이 생기면 "그런 법이 어딨냐"는 말을 자주 쓴다. 그렇지만 법은 상식이요, 정의이며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다. 다시 말해 법은 모든 사람들이 꼭 지켜야 할 사회규범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법과 생활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국민의 대표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까지 법을 어기고, 자신들에 불리하면 법의 공정성을 논하며 싸우기 일쑤다. 법을 제정하고 법을 지켜야 할 사회지도층의 작태가 이러니, 국가의 기강은 말할 것도 없다.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과 준법 의지가 최근 들어 많이 느슨해진 느낌이다. 가장 기초적인 법질서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일례로 횡단보도가 아닌 곳을 건너가거나 담배꽁초를 버리기 일쑤며 등산할 때 라이터를 가져가면 3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돼 있는데도 사람들은 당연한 듯 라이터를 가져가서는 심지어 담배까지 피우고 있다.
법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2%가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로는 집행이 엄격하지 못해서, 까다롭고 자주 바뀌는 법 내용 때문에, 법을 안 지키는 게 편하므로,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보니까 등의 순서로 응답자의 수가 나타났다. 법을 안 지키는 게 편하고,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는 의식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요인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놓고 편파나 표적 수사가 횡행하며 불공정한 때가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권력층의 법법행위에는 면죄부가 주어지지만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억울하게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는 경우까지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이 달라질 수 있는 법의 맹점을 이용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처지가 달라지기도 한다. 더욱이 극심한 경제불황과 맞물리면서 법을 무시하려는 사람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판사는 간혹 오판으로 인해 '법의 이름'으로 '사법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오판으로 머리를 깎고 입산한 이찬형 판사는 법조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일제 때 평양 복심법원 판사 당시 그가 강도살인사건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지 얼마 후 진범이 붙잡혔다. 자책에 번민하던 그는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가 삭발했다. 조계종 종정까지 지내고 66년 표충사에서 입적한 그가 바로 효봉 스님이다.

어쩌면 재판제도의 역사는 이같은 오판을 줄이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적 편견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법관 3명이 함께 참여하는 합의부 제도를 두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합의부에 판사가 모자라면 다른 재판부의 배석 판사가 원정을 가서 자리를 채우는, 이른바 판사 '꿔주기'가 관행화 되고 있다고 한다. 법원 조직법에 '합의 심판은 판사 3인으로 구성된 합의부에서 이를 행한다'고 못박아 이 숫자를 꼭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리출석'한 판사는 자신 몫의 판결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는 탓에 사건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모자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로 인한 부실재판우려는 상존할 수 밖에 없다. 변호사 개업, 충원 지연 등으로 법관 부족 현상이 만성화돼 있는 데다 최근 크게 늘어난 여성 판사들이 출산 유가를 위해 장기간 자리를 비워 판사 꿔주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법과 양심, 그리고 정의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인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도록 예산지원을 통한 법관 증원, 과다한 사건으로부터 해방, 공정한 판정을 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국민들의 의식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법을 지켰다간 공연히 손해만 본다는, 피해의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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