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면 作 ‘현기증’ (2014) 작은 사진은 작품의 일부.

강용면은 전북(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각가다. 그는 작품 활동 30년이 넘는 시간을 ‘한국미술 정체성’ 탐구와 함께 보편적 ‘글로벌 미학’을 위한 예술적 화두로 일관성 있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방대학 출신으로 지방에서 활동하면서 한국 현대미술계 주류인 서구 형식미학의 작품경향이 아님에도, 수도권 대학출신의 높은 벽을 넘어 서고 있다. 철저한 온고지신의 예술철학과 자신의 독창적 미학어법으로 확장시켜가는 그의 예술적 열정과 탐구적 태도는 한국미술계에 의미 깊은 교훈과 메시지를 남겨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고지신’의 한국미술 자생력 탐구
1990년대 서두, 한국사회는 서구의 새로운 문화이론 ‘포스트모더니즘’이 수입됐던 시기로 문학, 사회학, 철학, 예술분야는 물론 자연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확장되면서 우리사회 전반을 뒤흔들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되면서 대중문화, 모더니즘, 아방가르드가 어떠한 맥락으로 접촉지점이 이뤄지는 지에 대한 토론을 축척시켜 갔다. 서구의 신(新)식민지 지배의 문화이론인가? 아니면 20세기 세기말, 새로운 대중문화 양식이자 탈문화 경향의 전환기 대안으로 인류의 삶과 문화 양식에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가? 등에 대한 담론이 형성됐다. 그리고 21세기 도시와 지구촌 환경에 신기루처럼 보이기도 했다.

강용면은 대학시절부터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 미학을 존중하던 교수의 가르침인 현대미술에 반동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무분별한 서구의 형식미학에 점차 밀려 소외돼가는 우리의 전통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본격적인 탐구를 시작한다. 이 시기는 일부 서울을 중심으로 의식 있는 젊은 미술인은 ‘한국미술 자생력 회복’에 대한 관심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활동을 함께 하지 않고 고향인 군산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작품 활동에 적극성을 갖는다.

그는 대학에서 서구의 형식미학과 아카데믹을 수업했고 한국현대미술 현장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던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등 서구 문예이론에 반동적이고 비판적 예술적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의 전통미술에서 정체성과 함께 미학을 추출해 현대적 재해석을 해가고자 노력’을 했다. 전통의 답습이나 국수주의를 경계하고 ‘온고지신’의 화두로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는 조교시절,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작품 제작에 재료비를 고민했던 시기, 마침 대학의 뒷산은 건축계획으로 아름드리 통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오랜 전통조각과 공예재료로 활용됐던 나무를 얻기 위해 시간만 나면 조각실로 옮겨 다듬고 또 다듬는 목 조각에 집중한다.

강용면 作 ‘역사원년’ (1996)

이시기 제작했던 ‘역사원년’과 ‘온고지신’ 작품시리즈 집중한다. 통나무를 깎고 다듬는 일련의 관정을 반복하면서 형상은 공예적 요소의 깊이를 고졸미와 소박미로 담아내며, 오방색의 반복적 덧칠을 통해 완성도와 전통미학의 깊이를 더했다. 즉, 음양오행 사상을 기저로 전통 민속신앙의 이미지를 끌어들여 화석화된 전통이나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그의 독창적 예술 상상력을 통해 생명이 호흡하는 건강한 우리시대의 목 조각의 단면을 제시했다.

이처럼 그의 ‘온고지신’ 예술관은 전통이라는 문화적 코드를 읽어가면서 닫쳐있던 글로벌을 향한 빗장을 여는 성과를 출발시켰다.


▶민중의 바벨탑에 미학의 선언 담다
강용면은 2000년에 들어 대학을 부유하는 강의를 접고 전업 작가의 고단한 길을 선택하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하나는 2년에 1회씩은 개인전을 하자는 스스로의 약속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술가로 스스로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는 매너리즘의 경계다. 그와 동시에 ‘온고지신’의 주제에 따른 새로운 재료의 끊임없는 실험과 형식미의 탐구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현재까지 조각가로 쉽지가 않은 개인전을 23회를 진행했다. 매 전시마다 탐구적 작가정신은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양식의 작품으로 예술적 화두를 전시장에 발산시켜왔다.

강용면의 인근 마을 출신인 ‘고은’ 시인을 존경해 시집 ‘만인보’에 집중하게 된다. 시집에 등장하는 4천300여명은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부터 한국 현대사에 중요한 인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 그는 ‘만인보’라는 시집을 통해 ‘역사’와 ‘민중’에 대한 인식의 폭을 확장시켜 가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민중은 어떻게 살아왔고 존재해왔던가를 인식하게 된다. 우리의 민중은 한일합방과 일제강점기, 해방정국과 6·25,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주관했던가? 역사와 시대, 사회와 규범의 문화와 정서를 지키고 존중도 했지만 때로는 거칠게 뛰어 넘고자 온 몸과 맨주먹으로 항거하면서 조국과 고향, 혈육과 정체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만인보’의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자그마한 나무(5㎝×5㎝)에 각인시켜 가면서 이름 없는 시골동내 머슴과 옆집 영감을 통해 도시의 구두닦이 청년을 읽어내려 했다. 이러한 이름 없는 민중은 외세 앞에 의병이자 동학의 주체요 목숨을 던진 독립투사요, 제주 4·3의 민중이요, 광주5·18의 민주 투사이자 세월호의 아픔이며 광화문의 촛불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역사와 시대의 주인이었다.

그의 작은 각목에 이름 없는 민중의 얼굴을 섬세하게 때로는 힘차게 담아내기를 시작한다. 매일 매일 시간의 축척으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리고 평범한 주변인물을 하나하나 각인시켜갔다. 이렇게 19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목조 4천여명과 소조 2천여명, 총 6천여명의 인물로 ‘현기증’을 제작, 2014년 개인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내는 바벨탑을 선보이게 됐다.

현대인의 삶이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계 부부사이, 형제사이 등 기쁨과 슬픔, 갈등과 종교, 평화와 전쟁, 삶과 죽음사이 공동체의 희·노·애·락을 삶의 파노라마이다. 그리고 ‘현기증’은 먹물을 머금고 있다. 검정은 죽음의 무거운 민중의 무게일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외침이요 민중의 뜨거운 항거로 받아들어 진다.

강용면의 ‘현기증’은 한국 근·현대사의 바벨탑이요 미학의 선언이자 강력한 표상으로 현재도 작품을 진행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아이콘으로 저항과 타협
그는 ‘97, 제2회 광주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다양한 재료와 형식의 변화로 새로운 변신의 계기가 됐던 것으로 보인다. 작품 중 두 가지의 시리즈에 관심을 집중해 본다.

강용면 作 ‘taking a lesson from the past’ (2000)

하나는 ‘Taking a Lesson From the past’(과거로부터 교훈을 얻다) 시리즈다. 부처나 동물(12간지) 또는 어떠한 형상의 골조를 만들고 LED조명으로 넣은 상태에서 투명한 또는 색상이 있는 특수한 아크릴판을 열을 가해 연성화 상태에서 순식간 골조에 씌워 작품을 완성한다. 여기에는 아크릴판이 식기 전에 짧은 시간에 완성을 해야 과정은 높은 숙련도가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하게 됐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아크릴 표면에 한국 무신도에 나오는 색상으로 에어스프레이나 자동차 외장도료 채색과 열처리과정을 거쳐 표면의 더욱 고급스러운 완성도를 높인다. 이러한 작품제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했을까? 얼마나 많은 드로잉으로 치밀한 계획을 했을까? 가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만의 독창적 제작의 노하우다.

그의 ‘Taking a Lesson From the past’ 시리즈의 경우 전통에서 이미지를 끌어오는 과정과 현대적 재구성을 위한 재료의 탐색과정 중에 일어나는 전통과 현대의 문명의 이념과 정서, 문화적 충돌로 발생되는 에너지는 더욱 현대적이고 글로벌 미학의 보편성으로 읽혀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밥 그릇’ 시리즈로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님은 아버님을 위해 평생을 안방 아랫목에 밥그릇을 이불 속에 두고 기다리시곤 했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아버님을 위한 어머님은 사랑과 존중으로 한 끼니 식사가 아닌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담겨진 그릇이었다. 이러한 밥그릇은 어머님의 존중과 배품이었다. 이러한 배품의 가치는 현대에 들어 거추장스러운 박제된 기억만 희미하게 존재할 뿐 고단하고 고통의 상징으로 읽혀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의 그 밥그릇은 곧 생명이자 삶이었다.

그러나 최근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현대인에게 밥그릇은 쟁취의 대상이 됐다. 밥그릇과 더 큰 밥그릇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과 투쟁을 반복하며 삶의 목적이 돼버린 지 오래이다.

이 지점을 주목한 그의 예술적 상상력은 어린 시절 어머님의 ‘밥그릇’을 통해 따뜻한 생명을 담아내고자 한다. 밥그릇 위로 둥그렇게 올라온 밥(머슴의 밥)을 통해 평화와 풍요, 안녕과 나눔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밥 그릇’은 대형화 되고 다양한 재료로 제작돼 공공장소에서 발견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반어적이고 은유화 된 아이콘으로 존재한다.

위의 두 가지 시리즈는 광주비엔날레 참여가 가져다 준 변화로 공통된 점은 전통에서 작품의 근간을 끌어들여 현대적 재해석을 했다는 점과 제작과정의 섬세함과 완성도를 높이면서 글로벌 확장성을 확보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논리에 맞서는 반동적 아이콘으로 저항과 타협을 반복하고 있어 보인다.

특히 ‘Taking a Lesson From the past’ 시리즈는 현대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고급스러움은 후기자본주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감각적 아이콘으로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렇듯 그의 작품에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게 됐을까? 그에게는 강하게 작동되는 진보적인 예술가적 태도와 투철한 작가정신으로 기존 양식에 대한 반동적 아방가르드 근성이 기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5월과 서정성에 감춰진 발언
강용면 그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그는 군대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근무 중 전남과 전북 출신의 인적사항 파악에 의문이 있었으나 상세한 정보가 없어 갑갑함은 모든 동료들에게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1981년 전역 후, 자연스럽게 주변지인을 통해 5·18을 접하고 먹먹해진 가슴으로는 한동안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이후 1997년 나무 목각을 연작으로 제작 시, 광주5·18에 참여한 평범한 광주시민이 응시하는 목각 작품을 제작한다. 그리고 다시 ‘현기증’의 한국 근·현대를 관통하는 바벨탑을 쌓아가면서 광주5월과 이름 없는 광주시민을 조각했다. 물론 작품 ‘현기증’의 경우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평범한 우리시대의 서민들이고 광주시민이자 세월호의 아픔이요, 광화문의 수많은 촛불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그는 광주5월을 포함해 민중이 역사를 주관했던 시점을 예술로 담아내면서 역사 앞에 다시는 반복이 없어야 한다는 증언을 남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작품을 제작할 때 마다 ‘왜 우리 민중의 역사는 고난의 반복일까?’를 생각할 것이다.

강용면의 예술은 미학어법이 강해 시각적 부담이나 추상성으로 대중적 외면과 표현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역사와 시대를 외면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미학의 정체성을 감각적이고 현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형상력은 시대의 정서와 트렌드로 재구성하면서 전통에서 기인한 온화함과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 온화함과 친근성 뒤에 날카로운 역사성과 시대적 발언을 숨겨 둬 대중에게 시대의 트렌드를 앞세워 다가서고 있다고 본다. 바로 ‘온고지신’의 예술철학과 전통과 현대와 미래를 읽어내는 확장된 문화사적 관통력을 갖췄기 그렇다고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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