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저나 작가는 작품을 쓰지만 지역의 뒤늦은 코로나19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가 걱정이다.

▶‘토끼의 일생’에서 우리는 긍휼한 마음으로 “몹시 야윈/어린 토끼 한 마리”의 ‘꿈’을 읽는다. 작품 속의 토끼는 “눈 덮인 밭고랑 사이를 헤집으며/주린 배 채우려다//몰이꾼이 펴 놓은/덫에 목이 채여” 죽고 만다. 굶주린 채로 눈 내린 산천을 돌아다녀도 마주치는 것은 몰이꾼의 덫이라는 사실에서 시인의 시선이 무심할리 없었을 것이다.

▶‘봄의 통점’은 시적상황을 여는 힘이 상당한 작품이다. 떨어진 동백꽃은 핏빛 흥건한 현장을 만들었고 그로 인한 ‘음주뺑소니차’의 상황에 직면한다. 토종 동백의 낙하에는 비장함마저 느껴지고 만물 소생의 봄날은 코로나의 공포 속에 실종돼 날씨는 화창해도 굉음소리 흥건한 핏빛사태만을 마주하고 있다.

▶‘선운사 꽃무릇’은 ‘숲 그늘 아래’ 불사른 영혼들이 온 산천에 번져 고요에 잠긴 산사가 불을 켠 듯 화려해졌다. 통상 상사화라고도 하는 꽃무릇은 혼백의 세계를 불태우고 “얻으니 기쁘고 만나니 반갑다”는 사문(寺門)에서 햇빛 닿는 곳마다 중생의 업을 다스리듯 꽃무릇의 개화가 대자연의 잔치마당처럼 열정적이다.

▶수필 ‘노파로 변한 신발’은 “언제부턴가 신발을 잃거나 낯선 곳에 벗어놓고 오는 꿈을 자주 꾸”면서 ‘잃어버린 신발’은 그 자체로 “내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간다는” 회귀적 서사를 사유한 작품이다. 이상하게도 잊을만하면 “손가락으로 건들기만 해도 넘어질 것 같은 노파가” 등장하고 그 노파로 하여 신발에 대한 여러 상징성을 감칠맛 있게 펼친 이 작품은 수필의 맛이 자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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