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의 무상’에서 시인은 노을빛 운무에 싸인 산방에서 칡넝쿨이 감아 오른 바위와 갈바람에 춤을 추는 갈색나무를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생각한다. 문이 열린 틈새로 웃음 웃는 목단(牧丹)과 삽살개가 뛰어든 행랑채 너머에는 주홍감이 흔들리고 노곤한 육신의 땀을 닦는 전원 속의 텃밭 정자마루에서 “채운 듯 비워있고 비운 듯 채워진” 무념상태로 가을을 보는 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피목皮木’은 “부처님 앞에서도 오욕칠정에서 한 치도 비켜서지 못한 나”의 소원을 빛바랜 연등에 얹고 “가족 사랑하는 마음이 미치지 못할 곳이 있을까”를 저어하며 오체투지로 빌고 또 비는 화자의 모습이 못내 결곡하다. 배부른 하루 세끼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도회지에 나가 살기는 이뤘건만 “아직도 바랄 것이 남아 있어” 법당에 엎드려 치성 드리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신변잡기이건만 마음 구석구석에 펼친 정감어린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다운 문장이다.

▲‘소나무의 일가’는 “초겨울 날 병풍산 기슭”의 적송들을 보며 아기 재롱이나 웃음소리를 듣는 시인이 노적 같은 솔향기와 너럭바위 틈새에 뿌리 내린 증손 4대의 소나무를 보며 고단한 하루를 녹이고 있다. 조선소나무는 몸이 붉고 얼굴이며 체형이 두루 예술작품이다. 그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이겨냈을 폭풍우나 겨울 혹한의 시련은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만 흐르는” 소나무밭의 낭만성으로 이어지면서 “마른 입술 적셔 주어 고단함을” 위로하는 노래가 된다.

▲‘가녀린 묵상’에서 우리는 밤을 새운 시간에 희망과 건강과 행복을 향한 기도를 올린다. 여기에는 “손에 잡히는 소소한 일들에 얽힌 마음이 풀”리는 내 마음의 세계가 존재하고 움츠러든 마음을 고쳐 잡고 모든 것은 내 탓으로 돌리며 더더욱 “낮은 자리에서” 낮은 자세로 두 손을 모으는 화자의 묵상은 그 어떤 기도보다도 강건하다. 유해상 시인에게 ‘가녀리다’는 말은 기도에 응답을 주시는 절대자를 향한 더 낮은 자세로 흘러가는 강물 같은 자별함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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