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문학평론가 / 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

눈이 부시도록 화사한 봄날이다. 꽃잎 위에 질문 하나 써본다. 근래, 당신은 누군가에게 책과 꽃을 선물했거나 받아 본 적이 있는가? 글쎄, 필자의 경우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세상을 허둥대며 살고 있다는 얘기겠다.

고교 시절 일 게다. 누군가에게 줄 ‘소월 시집’을 포장하면서 설렘의 밤을 지새웠던 기억이 있다. 70-80년대만 해도 흔한 풍경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간혹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전설 속의 장면이 된 것 같다.

책은 다른 선물과 달리 ‘기쁨과 축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친구의 생일이나 입학·졸업, 각종 기념일 등의 축하 자리에 으레 책이 선물로 이용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책은 주고받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사랑의 메신저’역할을 한다. 여기에 붉은 장미 한 송이를 곁들인다면 그것은 최고의 이벤트다. 며칠 있으면 4월23일이다. 이날은 1995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World Book Day)’이다. ‘세계 책의 날’은 1926년부터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사랑하는 이에게 책과 장미를 선물(일명 : 상트 호르디)하는 관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4월23일은 1616년 세계적인 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동시에 눈감은 날이기도 해 의미가 더하다. ‘세계 책의 날’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책 읽기를 서로 권하는 날’로 정해 다양한 ‘책의 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학교와 도서관이 이날 행사에 참여하고 있고, 스페인에선 사랑하는 이에게 지성의 상징인 책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붉은 장미를 선물하는 전통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때 광주에서도 ‘책의 날’ 축제가 열린 적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충장로의 한 대형서점에서 ‘책의 날’을 기념해 손님들에게 장미 선물의 이벤트를 마련했다. 하지만 서점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2000년 초 76년의 역사를 접었다. 그 후론 우리 지역에선 그 같은 풍경은 찾아볼 수 없다.

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도구만은 아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대화와 이해, 관용을 배우게 된다. 이처럼 책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해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지식정보화 사회를 실현하는 수단이 됨은 말할 나위 없다. 책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찬란한 인류 문명을 창조해낸 지식과 교양이 그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책을 통한 간접 경험에서 얻은 지식으로 지금의 문명을 일궜다. 뿐 만 아니다. 인간의 상상력과 사유 그리고 철학이 담겨 있는 책은 당대의 거울이자 문화의 산물이다. ‘책은 인생의 스승’이라는 격언에 크게 동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대안 매체의 출현으로 책이 점차 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 책의 날’이 제정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며 위안이다. 세상살이가 각박하고 힘들더라도 올해 ‘책의 날’만큼은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작지만 큰 이벤트를 준비해보자. 비용은 돈 만 원 정도면 족할 듯싶다. 일과를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동네 서점에 들러 책과 장미를 사자.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 초인종을 누르자. 책 한 권과 장미 한 송이의 무게와 가치는 그 이상일 것이다. 나도 그리해야겠다. 벌써 아내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책의 날’까지 설렘은 지속할 것 것 같다. 또 밤잠을 설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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