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문학박사·문학평론가

몇 번이나 넘어졌을까. 6전 7기 끝에 ‘9급 공무원 공개경쟁시험’ 합격 소식을 접한 그 날, 딸 녀석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면서 펑펑 울던 그 날 말이다. 눈에 실핏줄 터지면서 몇 년을 노력해 얻은 것이니 감격했을 법도 하다.

휴일에는 시급을 더 받는다며 대학 시절 주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던 속 깊은 녀석. 아빠로서 자괴감이 든 건, 취업 준비에 함몰되어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달콤한 연애 한 번 할 수 없는 현실,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 키워준 게 아빠 세대인 듯해서다.

더욱 속상했던 건 대학 졸업식 날, 건사한 네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채 좌절하고 있는 네 모습이었다. 제 깜냥엔 잘나가는, 자존감 강한 선배였다고 생각한 아이였던지라,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이기 싫었겠다. 그 까닭은 대학 졸업식 풍경을 전하는 그날 밤 뉴스를 통해 알았다. 대체 대학마다 졸업식장은 텅텅 비었고, 취업에 성공한 학생 몇몇만이 자리를 지켰다.

돌이켜보매, 아빠들의 대학 시절은 그래도 캠퍼스에 낭만이 넘쳤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청년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여기엔 우리가 아니면 위기에 처한 나라를 누가 구하겠느냐는 영웅심리도 작용했을 터이다. 그때 아빠들이 학사주점에 좀 덜 가고 우리 사회를 위해 좀 더 고민했더라면, 너희 세대는 어땠을까. 딸과 그 또래의 청년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다.

딸 녀석은 우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시학원 대신 스터디그룹을 이용했다. 현장 강의를 듣고 싶겠지만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학원을 포기한 게다. 항상 철부지로만 알았는데 애늙은이가 된 속 깊은 녀석을 생각하니 지금도 마음이 저린다.

언제부턴가 아빠는 뉴스에 별 관심이 없다만, 주위의 얘기를 듣자면 고물가에 대한 심각성이 도를 넘어선 것 같다. 여기에 공시족들을 불안케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윤석열 정부가 매년 공무원 수를 부처별로 정원의 1%씩 감축하겠단다. 너야 관계없겠지만,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네 또래의 청년들은 어찌한다니. 공무원 시험은 대개 너처럼 힘없고 배경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들이 갖는 좌절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요즘 ‘9급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아빠가 이 글을 쓰는 이유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여당 대표가‘아는 사람들끼리 높은 자리도 아니고 행정요원 9급으로 들어갔는데, 뭘 그걸 가지고 그러느냐’라고 답한 모양이다.

그래,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그럴 수도 있다. 채용 조건도 꽤 까다로웠다. 첫째는 상대를 어렸을 때부터 잘 알아야 하고, 둘째는 선거 캠프에 들어가 승리를 위해 공헌해야 하며, 셋째 방학 때나 대학 다닐 때 선거사무실에 나가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는 게다. 글쎄, 이 조건을 충족하는 우리나라 청년이 몇이나 될지. 설명하기 난감하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대통령 같은 지체 높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한낱 가난한 선비일 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도 못 하겠느냐만, 아무리 꿰어봐도 아빠는 그런 분들과의 연결고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아빠의 능력을 미리 알고 스스로 노력해준 네가 참 고맙고 기특하다. 사람들이 높은 자리가 아니라고, 최저임금 받는 9급이라고 폄훼하더라도, 크게 괘념치 말고 귓등으로 듣고 흘려라. 누가 뭐래도 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9급 공무원’이다. 아빠가 10만 원 보내마. 퇴근 후 동기들과 짜장면 한 그릇 나눠 먹으며 용기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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