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필통에 바람 한 줄기

허공의 손가락에 음표 달아
겨드랑 사이로 일렁이던 바람결
그림자만 바스락거린다

온몸 겹겹이 접어놓은 숲의 문양으로
속눈썹 같은 별자리 뿌려 놓은 바람의 무늬들
문득, 유목의 긴 행로를 찾아
가는 길 묻고 싶다

나비처럼 둥글게 몸 마는가 싶더니
뜨거운 호흡 내뿜으며
살갗 환하게 풀어헤치는 접첩선摺帖扇*
느슨해져 가는 한때의 푸른빛을
잇몸으로 켜켜이 물고 있다

깊은 눈으로 기억을 더듬어
계절의 등선에 묻었을 저 청춘의 꽃자리에
우화의 본향을 찾아
발끝에 돋는 나비의 꿈

옥필통에 이는 한 줄기 서체로 핀다

*접는 부채 혹은 접부채라고도 함

<양동률 약력>
▲ 열린시학 등단, 한국문화예술진흥협회 공모전 수상
▲ 윤동주 탄생백주년 기념 문학상 수상(문학사상)
▲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전남문인협회 회원
▲ 현 광주재능시낭송협회 부회장
▲ 저서 : ‘발끝에 돋는 나비의 꿈’

-평 설-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양동률 님의 시 ‘발끝에 돋는 나비의 꿈’에서의 시적 화자는 옥필통에 이는 바람 한 줄기를 관찰하고 있다. 그 바람은 허공의 손가락에 음표를 달고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람의 노랫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 바람은 온몸 겹겹이 접어놓은 숲의 문양을 하고 있어 속눈썹 같은 별자리를 뿌려 놓기도 한다. 여기서 문득 시적 화자는 바람에게 유목의 긴 행로를 찾아가는 길을 묻고 싶어 한다. 유목민처럼 수천 년을 떠도는 바람은 그 길을 알고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답답한 인생 행로도 바람은 알고 있을 것 같다. 종종 일이 풀리지 않아 답답할 때 우리는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간다. 은연중에 우리는 바람을 동경하고 바람을 열망하며 바람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맨발로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듯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이다. 또 바람은 느슨해져 가는 한때의 푸른빛을 잇몸으로 켜켜이 물고 있다. 참 멋진 표현이다. 푸른빛의 가을 하늘을 바람이 물고 있는 건지,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호수를 바람이 물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을 잘 표현했다. 바람은 다시 어느 한때 청춘의 꽃자리에서 나비의 꿈이 되었다가 옥필통에 이는 한 줄기 서체로 피어난다. 바람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낯설게 하기가 멋스럽다.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게 시의 특질이라는 걸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이게 바로 시의 맛이요, 멋이 아닐까.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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