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논설실장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보다 더한 경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는 끝이 안 보인다. 소비자물가는 5-6% 고공행진이다. 부동산은 버블이 꺼지며 빙하기가 도래했다. 달러는 치솟고, 주식은 바닥이다. 금융 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중소기업은 하나 둘 도산하고 소상공인, 서민들은 짓누르는 빚에 시름한다. ‘이러다 나라 망하는 것 아냐.’ 곳곳에서 심상찮은 경고가 들린다. 30년 장기 침체 늪에 빠진 일본을 넘어선 불황이 닥칠 것이란 암울한 예측이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모른다. 정확히는 모른 체다. 참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5개월여, 그야말로 막장이 따로 없다. 국민들은 기가 차다. 국정감사는 막말이 넘쳐난다. 시작부터 저질 싸움판이다. 익히 예상했던 바다.

“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김일성 주의자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뱉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22년형, 이명박 대통령 17년형을 (선고)했지 않냐. 이거는 너무 심하다. 그런 식으로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훨씬 더 심하게 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선 “문재인은 총살감”이라고 한 과거 발언에 대해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차라리 혀 깨물고 죽지 뭐하러 그런 짓을 합니까.” 권성동 의원은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을 향해 사퇴를 요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정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한미일 군사훈련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자신의 SNS에 올린 글로 ‘식민사관’에 입각한 망언이다.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진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중심으로 지도부가 재편됐다. 전통의 텃밭이라는 호남 출신은 또 입성에 실패했다. 배려한다 해서 지명직을 앉혔다고 하지만 최대 지지 기반을 갈수록 잃어가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함께 하는 집권여당이 자중지란으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비상이라고 하나 민주당은 반사이익을 못 누리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1야당의 무게감, 존재감이 없다. 무기력하다. 어쩜 여야가 한결 같다. 한 줌도 안 되는 묻지마 팬덤에 기대는 정치행태에 안주하고 있다.

신·구 권력의 대충돌이 점입가경이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비속어 논란,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의혹,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 조사 요구, 민주당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공방 등이 뒤엉켜 있다. 종반으로 흐르던 국정감사는 민주당이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중앙당사 압수수색 시도를 정치탄압으로 규정하고 국감 보이콧을 선언, 극단의 파행을 맞는다. 민생은 더더욱 뒷전으로 밀려났다.

광주·전남지역 국감에도 불똥이 튀었다. “한전공대 퍼주기가 도를 넘었다. 한전이 ATM(현금자동인출기)이 된 것이다.” 나주 혁신도시에서 열린 한국전력 국감에서 국민의힘은 한국에너지공과대학 지원에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시민단체 일부에서 ‘광주판 대장동’이라고 우려하는 사업이다. 지나친 특혜를 준 것 아니냐.” 4년 만에 현장에서 치러진 광주광역시 국정감사는 사업자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으로 뜨거웠다.

국정과제 균형발전과 지방시대를 위한 정책 경쟁은 없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복합쇼핑몰, 전남의 해묵은 숙원인 의과대학 신설, 그리고 상생 공약 1호로 유치를 추진 중인 반도체 특화산단 등 어떻게 얼마나 지원할 것인지 고민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나마나다.

막말러들은 반성과 사과는 하지 않고 ‘공부를 더 하라’며 도리어 훈계요, 호통이다. 정치인들은 무지하고 뻔뻔스럽다. ‘민생’을 기조로 내세운 국정감사는 무능과 타락의 끝판왕이 됐다. 국감 무용론을 넘어서 국회 무용론을 감당해야 할 판이다. 해서 1년 6개월 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기다리게 된다. 참신한 인물의 발굴, 실낱 희망을 걸어보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 정부의 집권 3년차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대국민 중간 평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여기서 근심을 더하는 것 한 가지. 여전히 정제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국정 최고 책임자 윤 대통령의 거친 말투다.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 취임 후 첫 원외 당협위원장 초청 오찬간담회를 진행한 자리에서 느닷없는 색깔론을 꺼내면서 민주당은 ‘종북 주사파’로 매도한 정치보복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대통령실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나섰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국민들은 힘들다. 삶이 버겁다. 이게 진짜 나라냐며 분노가 커지고 있다. 고등학생이 그린 ‘윤석열차’ 카툰이 던지는 메시지가 이것이다. “만평에 재능이 있어 칭찬받아 마땅한 학생을 비롯해 누구든 정부에 대한 풍자적인 비판(poke)을 하면 비난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영국 총리 열차’ 원작자 스티브 브라이트는 현 상황을 짚었다. 감히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가. 대한민국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정치분열이다. 국민들만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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