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의 역사기술에서는 여성들의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온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은 우리 전체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이런 가운데 전남 여성들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전남여성가족재단이 ‘보성 삼베’를 주제로 보성 북부 지역의 역사와 여성 삶이 교차되는 지점을 다룬 전남여성생애구술사 ‘삼베, 그 마지막 실을 꿰는 전남여성들’을 펴냈다.

재단에서는 2011년부터 ‘전남여성생애사’와 ‘가고싶은 섬, 여성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사회·경제적, 생활·문화적 영역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올해는 보성 삼베를 지켜온 지역 여성의 삶과 그 안에 새겨진 지역사를 엮었다. 구술자 3인 송순남(1928년생), 박종례(1946년생), 박영남(1954년생)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삼베와 함께 살아온 전남 여성들의 가사와 돌봄 노동뿐 아니라 가내 생산 노동을 주도해온 경제적 주체로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송순남 씨는 “동네 여인들이 모두 뒷산으로 화전놀이를 갔지만 밥하고 베 짜는게 삶의 전부라 단 한번도 가지 못한게 한”이라고 말한다. 평생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지독한 노동에 시달려온 송 씨의 삶을 통해 가부장제 속 여성의 위치와 노동에 대해서 기억하게 한다.

박종례 씨는 “돌아보니 인생의 절반이 길쌈이었어. 밥해묵고 길쌈하고 밥해묵고 길쌈하고”라며 베를 짜며 지나온 세월 속 서러운 기억에 흠뻑 젖어들기도 했다. 자신이 평생 짜온 베 속에 배어 있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박종례 씨가 삼머리 부분을 잡고 가늘게 쪼개고 있다. 이를 삼째기라 부르는데, 얼마나 균일하고 가늘게 째느냐에 따라 씨줄과 날줄의 품질이 좋아진다.

박영남 씨는 “가난이 씨가 있나? 이 가난을 물리쳐야 되겠다. 그 생각을 마음 속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어. 우리 살아온 길은 말로 해도 다 못하지”라고 말한다. 박 씨가 ‘가난의 씨앗’이라 부르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내기 위해 억척과 끈기로 자신의 운명을 직조한 여성의 힘을 읽어낼 수 있다.

보성 지역 3인의 이야기에 스며들다 보면 삼베와 함께 했던 노동의 시간들과 함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다양한 지점에서 희생과 억압을 감내해왔던 여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통을 지금껏 지켜온 것은 여성들이었고, 상대적으로 그 주체성이 조명받지 못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전남여성가족재단 관계자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삼베를 지켜온 여성들의 기억들을 듣고 엮어냈다”며 “전남의 역사가 본 기록을 통해 보다 여러 가지 결로 살아 숨 쉬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남여성생애구술사 ‘삼베, 그 마지막 실을 꿰는 전남여성들’ 단행본은 전남여성가족재단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유튜브를 통해 생생한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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