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음이 자랐습니다
귓불에 닿는 숨결이 발끝을 들어 올릴 때
파르르 떨리는 시간의 눈꺼풀
묵음의 결구를 지우며 마법 같은 향기 번져옵니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시적 이미지를 통해 삶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사진 시집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도서출판 걷는사람의 첫 번째 사진 시선인 김휼 작가의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걷는사람 사진 시선’은 이름 그대로 사진과 시를 한 권에 엮어낸 것이다. 시인이 걸어온 삶과 보아 온 풍경, 느껴낸 정서를 한데 모은 작품집으로, 독자들에게 시인이 마주한 일상의 풍경과 그 안에 함의된 시상을 함께 선사할 예정이다.

시집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총 67편의 시와 사진을 고루 담아내고 있다. 67편의 시선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생명의 순환과 그 너머의 삶의 진리를 조감한다.

일련의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오롯이 시인의 시선으로 담아낸 일상, 자연, 풍경, 정서 등을 속속들이 만나볼 수 있다.

▲봄,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 ▲여름, 가뭇없이 밀려나는 먼 곳 ▲가을, 어둔 맘 그러모아 ▲겨울, 내가 걸어야 할 당신이라는 길 ▲다시 봄, 눈부신 찰나를 가지고 있는 총 다섯 개 부제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담긴 풍경을 통해 생의 숭고함과 지금 여기의 소중함을 담아낸다.

김휼 시인

시인은 “헤아리는 마음으로 피사체를 오래 들여다보면 신비 아닌 것이 없고 기도 아닌 것 없다”고 말한다.

꽃이 진 자리를 환한 연둣빛으로 채우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마음의 흉터도 무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소재를 취해 결코 사소하지 않은 미학과 시상을 사진과 시로 표현한다.

단풍이 우거진 가을 풍경을 두고 ‘한나절 쓸어봐도 마음은 비워지지 않는다(비울 수 없다면 고요히 中)’고 표현하거나 아스팔트 사이에 피어난 들꽃을 두고 ‘산다는 건 꽃 한 송이 피우고 가는 일(소명 中)’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낙조의 파동을 보며 ‘어느 사이/시간의 물결은 여기까지 날 데려왔구나’ 회한하기도 한다.

시인이 담아낸 사진 속 풍경은 길을 걷다 한 번쯤 마주칠 법한 일상의 모습이지만, 시인은 이를 놓치지 않고 순간을 포착해냈다.

다채롭고 풍요로운 삶의 외연을 이미지와 문자의 융합을 통해 분명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이번 시집에 담긴 사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김휼 시 사진전 ‘말에서 멀어지는 순간’은 오는 31일까지 5·18기념문화센터 지하 1층 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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