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인 조인애드컴·조인출판사 대표

행사를 기획하는 일은 매 순간이 전쟁이다. 수백 명의 인파, 화려한 조명, 터져 나오는 음향 속에서 나는 1분 1초를 다투며 현장을 지휘한다. 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이 일이 나의 본캐(본래 캐릭터)라면, 일이 끝난 뒤 돌아와 조용히 텍스트를 만지는 출판사 대표로서의 삶은 나의 부캐이자 안식처다.

가장 시끄러운 곳에서 일하는 내가, 가장 조용한 종이책을 만드는 일을 병행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의아해한다. “요즘 책이 팔리기나 하냐”는 걱정 섞인 핀잔도 듣는다. 하지만 최근 출판계에 날아든 낭보(朗報)는 나의, 그리고 우리 모든 작은 출판사들의 고집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바로 거대 자본이 아닌, 어느 작은 출판사가 번역하고 출간한 책이 2025년 노벨문학상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이다.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의 대표작 <사탄탱고>는 문단 구분조차 없는 난해한 문체와 방대한 분량 때문에 대형 출판사들이 선뜻 손대기 힘든 책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한 작은 출판사(알마)는 상업적 셈법 대신 ‘문학적 가치’를 믿고 지난 10여 년간 묵묵히 그의 책을 펴냈다. 모두가 ‘지금 당장 팔리는 책’을 계산할 때, 이들은 ‘오래 남아야 할 책’을 선택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이 아닌 ‘안목’의 승리가 아닐까.

여성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번 사건을 ‘다양성의 승리’라고 부르고 싶다. 모두가 화려한 메인 무대만 바라볼 때, 조명 꺼진 무대 뒤편에서 묵묵히 땀 흘리는 스태프들이 있기에 행사는 완성된다. 출판도 마찬가지다. 당장 눈에 띄지 않더라도 묵묵히 보석 같은 원고를 골라내는 작은 출판사들이 있기에 우리의 서재는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100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 한 권보다, 1천권씩 팔리더라도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1천권의 책이 존재할 때 그 사회의 문화적 토양은 비옥해지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늘도 화려한 행사장과 고요한 원고 교정지를 오간다. 행사가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처럼 찰나의 감동을 준다면, 책은 꺼지지 않는 모닥불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비록 나의 출판사가 대형 출판사처럼 수십 종의 책을 쏟아내진 못할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나만의 안목으로 작지만 위대한 책들을 펴낼 것이다.

서점에 가거든 베스트셀러 코너만 보지 말고, 구석에 꽂힌 낯선 출판사의 책을 한 번쯤 꺼내 보시라. 어쩌면 당신은 미래의 노벨상 수상작을, 혹은 당신의 인생을 바꿀 문장을, 그 작은 책 속에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행운아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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