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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폭풍과 키클롭스, 마녀 키르케, 세이렌의 유혹을 겪으며 수많은 동료를 잃는다. 포세이돈의 분노까지 더해지면서 귀향은 10년에 걸친 방황이 된다. 그러나 그는 결국 모든 역경을 견디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보며 명리학(命理學)에서 말하는 운(運)을 떠올렸다.
사주(四柱)가 태어날 때 주어진 자신의 기질과 그릇이라면 대운(大運)은 인생이라는 배가 지나가는 바다이고, 세운(歲運)은 해마다 달라지는 바람과 파도와 같다.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고 평생 순풍만 부는 것도 아니고 부족한 사주라고 반드시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들어오는 운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명리학(命理學)에서는 자신에게 필요한 기운을 용신(用神)이라 한다. 뜨거운 사주에는 물이 필요하고 차가운 사주에는 불이 필요하듯 사람마다 부족함을 보완하는 기운이 다르다. 좋은 운이란 단순히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운이 들어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시기다.
오디세우스 역시 힘만으로 시련을 이겨내지 않았다. 싸울 때는 싸우고, 피할 때는 피했으며 기다릴 때는 기다렸다. 이것이 역학(易學)에서 말하는 변통(變通)의 지혜다. 운이 좋지 않을 때는 몸을 낮추고 준비해야 하며, 좋은 운이 오면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흉운(凶運)이 반드시 불행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어려운 운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강해지고, 반대로 좋은 운에서도 욕심을 부리다 모든 것을 잃는다. 길흉(吉凶)은 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선택에도 있다.
인생에도 폭풍은 찾아온다. 재물을 잃을 수도 있고 사랑과 사업, 건강의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파도 속에서도 목적지 이타카를 잊지 않았듯 우리도 인생의 방향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명리학(命理學)은 시련이 없는 인생을 약속하는 학문이 아니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을 읽고 언제 나아가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자연철학(自然哲學)이다. 운명을 이긴다는 것은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운의 흐름을 알고 그 흐름을 타는 것, 그것이 오디세우스가 전해주는 역학(易學)의 지혜다.
최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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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