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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고 동구청 도시공간계획과와 함께 걸었다. 이럴 때는 동네 미화부장이 돼 꼼꼼이 살펴본다. 계림1동은 1968년, 15세기에 만들어진 경양방죽(호남 최대 규모 인공호수)을 매립 하고 광주시청이 들어왔고, 주택과 상가들이 자리 잡은 구도심이다. 1960년대-1990년대까지는 광주의 중심가 금남로와 대인시장을 곁에 둔 중심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빈 점포와 빈집들이 도시재생으로 새로 단장한 도로변에서 오랜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방치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 가게는 평생 여기서 작은 슈퍼를 하던 분이 돌아가신 뒤 3년 넘게 셔터가 닫혀있고, 방치된 채 이렇게 있어요. 대로변이고 길목이라 고민입니다. 돌아가셨지만 이 집 주인이 목수도 하시고 한옥도 지으셨다고 해요.”
오래된 장소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구멍가게의 미닫이 나무문이 정겨웠다.
“이 나무문을 그대로 살리고 70년-80년대에 팔았던 물건들이 진열된 모습으로 손 그림이 그려진다면 예쁘겠네요.”
우리는 ‘경양마실길’을 걸으며 상상했다. 지금 노인이 된 세대가 젊은 시절, 이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목수 일을 하고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마실 다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걸었다. 광주고등학교 문예부 학생들이 헌책방을 드나들며 문고판 시집을 읽는 모습을, 경양방죽에 배를 띄우고 즐기던 뱃놀이를 상상했다.
경양마실길에는 노인요양원이 있었고 등이 굽은 할머니가 느릿느릿 걸어가고, 리어커에 폐지를 묶어서 끌고 지나가다가 잠시 길가 턱에 앉아 쉬곤 했다. 동네 할아버지들은 그늘에 앉아서 트로트를 틀어놓고 병원에 다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벤치가 군데군데 놓이면 좋겠네요.” 사람들의 동선을 살피면서 말했다. 건물이 낡은 만큼 오랜 기억을 품은 주민들도 늙고 병들었다. 한 블록을 지나면 재개발로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2026년의 대한민국이 번쩍거리고 있고, 골목 하나를 가로질러 나오면 20세기 쇠락한 도시로 돌아가는 계림1동은 초현실적인 시간을 넘나드는 구도심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광주고등학교는 4·19혁명의 학교다. 문순태, 조태일, 박성룡, 이성부 등 시인들의 모교가 아닌가! 4·19에서 5·18까지 혁명의 서사가 있는 학교다. 경양방죽 뱃놀이의 낭만과 구멍가게냉장고의 부라보콘과 떨리는 마음으로 쓴 연애편지가 담긴 우체통의 추억과 시인들의 메시지를 빈집의 벽에 넣어서 풍요롭고 낭만적이고 활력이 넘쳤던 기억의 마실길을 상상하며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 뒷면 게시판에 그림과 시를 전시하고 선생님과 학교를 꾸미던 미화부장처럼 계림동을 보고 또 보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 사랑채에는 경양방죽 뱃놀이를 그려주세요.” “황혼의 노을을 그려주면 좋겠네요.” 주민들의 의견도 들었다. 마을을 지키는 주민이 귀한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호남에서 가장 큰 인공호수였던 경양방죽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일제강점기 1935년 ‘일본건국기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전남도지사(야즈마 스기조)가 최흥종 목사와 민족운동가들의 반대 투쟁 속에서도 방죽의 부분을 1차 매립했고, 1967년 남아있은 경양방죽이 매립되면서 겪은 이야기들과 봄에는 버드나무와 팽나무가 있는 저수지에서 뱃놀이하고, 겨울이면 썰매를 탄 추억들을 풀어놨다. “개미 떼가 하루아침에 태봉산 하나를 물어다가 그 큰 방죽을 메꿔브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그 고된 청춘의 이야기가 서린 계림1동의 빈집 벽에 살인적인 무더위를 견디며 꼼꼼한 벽화를 그리면서 동네 주민들과 친구가 됐다. 그림을 보러 유모차를 끌고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아파트촌 젊은 부부가 산책을 왔고, 동네 어른들은 “예쁘다, 예뻐!” 하시며 싯구를 소리 내어 읽어주신다.
이 길을 ‘경양인문예술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곧 가을이다. 노란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다. 걷다가 문득 한 구절의 시와 그림이 있는 벽을 만나거든 소리 내어 읽어보시길…. 계림1동 광주고 앞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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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3 (화) 09: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