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6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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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물결 산이 물든다 꽃길 사이로 풍경이 된다


광주토요산악회 봄꽃 산행 일림산 · 제암산

  • 입력날짜 : 2013. 05.16. 00:00
끝없이 펼쳐진 철쭉군락들 사이로 사람들과 꽃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산행 휴식중 단체사진을 찍은 회원들.
일림산과 제암산(807m)은 호남정맥의 일부로 장흥과 보성의 경계를 만들며 천태산(549m), 천관산(723m), 수인산(561m), 괴바위산(477m), 부용산(609m), 억불산(618m), 사자산(666m)과 함께 장흥 고을을 연꽃 형상으로 감싸고 있다. 제암산과 사자산은 장흥의 진산이요, 일림산은 웅치의 진산으로 봄철이면 철쭉명산으로 그 유명세를 톡톡히한다. 제암산을 중심으로 갑낭재에서 사자산 기슭까지 약 7㎞ 구간의 60여㏊에 대단위로 철쭉군락을 이루고 곰재산 일원은 50년생 이상 된 철쭉 10여만 그루가 집단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게다.

이번 주는 철쭉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일림산(626m) 에서 제암산(778m)을 종주하기로 하였다. 이 산의 볼거리는 단연 철쭉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자생 철쭉산의 명성을 다른 산에게 절대 양보 할 수 없다는 자부심으로 소문이 자자한 산이다. 이 곳의 철쭉은 남해 바다의 해풍을 맞고 자란 탓으로 다른 산의 철쭉에 비하여 꽃송이가 큼직하고 진분홍과 연분홍이 조화를 이루어 진한 색깔을 자랑한다. 드넓은 산등성이에 드문드문 멋스런 소나무를 제외하고는 잡목하나 섞이지 않는 철쭉군락의 연속이 눈길을 잡고 유난히 밑둥이 굵고 키 또한 사람의 머리를 넘어 터널을 이룬 곳도 있다.

산행 초입인 한재에서 아미봉을 거쳐 일림산 정상의 철쭉 군락지 사이를 헤집으면서 꽃무리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5월의 따가운 햇빛을 맞아 진한 땀으로 답을 하며 완만한 능선들을 오르내려야 한다. 일림산(626.8m)은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게 그 넓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광활한 산등성이를 뒤덮고 있는 경이로운 풍광에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면서 산객의 발길을 잡고있다. 그 규모가 무려 400만㎡라니 그저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철쭉무리를 뒤로하고 사자산으로 향하는 길은 부드러운 육산으로 사색의 오솔길이다. 조릿대와 참나무숲길 사이사이에서 외톨이가 된 철쭉꽃이 수줍은 듯이 반겨주는 등산로는 때마침 오가는 산객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다. 떼로 몰려 자생하는 조릿대는 자신들이 확보한 영역은 절대로 남에게 양보하지 않는 독선주의적 식물이다. 그런데도 산죽의 숲길이 걷기도 편안하게 널따랗게 다듬어져있다. 이는 필경 누군가가 전생의 업보를 끊어 버리기 위해서였거나 아니면 당대의 공덕을 쌓기 위하여 땀을 흘리면서 산죽의 몸에 낫을 걸어 말끔하게 다듬어 놓았을 것이다.

사자산으로 오르는 길은 참으로 옹골찬 된 비알이다. 밧줄이 늘어진 이마위로 올려다 보이는 정상 바위 봉우리에는 먼저 오른 사람들이 지르는 정복감에 찬 환호성이 들려온다. 오르막을 몇 번의 숨고르기를 반복하고서야 정수리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알맞게 불어오는 하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니 턱까지 차올랐던 숨이 진정이 된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사방을 살펴보니 서쪽으로 머리를 두르고 엎드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영락없는 사자의 형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머리가 되는 사자두봉으로 연이어진 허리부분의 줄기가 참으로 장대하게 건너다보인다. 매서운 북풍에 시달려 자라지 못한 키 작은 철쭉꽃이 발 아래로 꽃 융단을 깔아주는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간재가 꽃섶 위로 아련하다. 뒤를 돌아보니 붉게 타 오르는 일림산 정상은 아직까지도 그 붉은 기운을 예까지 드리우고 지금까지 힘들여 걸어온 흔적들이 빠짐없이 시야를 가득 채워준다. 키 작은 철쭉 밭 사이를 구불대며 내려서니 장흥읍과 휴양림에서 올라서는 간재다.

여기서 곰재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온통 철쭉이 바다를 만들어 주고 있다. 광활한 철쭉 평원에는 사람과 철쭉이 뒤섞여 또 다른 모습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 좌우로 온통 철쭉뿐인 길을 걸으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면 호남정맥의 줄기가 완만하면서도 뚜렷하게 하늘금을 만들어 주고 진행방향 건너다보이는 제암산을 건너다보니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야만 하는 등 행길은 힘께나 써야겠다는 생각에 다리에 힘이 모아진다.

짐작한 대로 급한 경사를 조심스럽게 내려 웅치(곰재)에 이르니 가야 할 길은 계속 이어져 삶의 험난한 길을 복습이라도 하는 듯싶다. 이제 힘이 거의 소진되어 가는 거리와 시간이다. 이제부터는 끈기와 인내력이 지극히 요구되는 산행의 막바지에 이르는 자신과의 싸움이 되는 매력 포인트 상황이다.

제암산 정상을 힘겹게 올라서니 제왕이된 기분이다. 임금바위라 했던가 제왕이 된 기분으로 내려다 보는 발아래 세상은 평화로워 보인다.

임금바위에서 머무른 것도 잠시. 작은산으로 내리는 길은 조심스럽게 몇 번의 바윗길을 돌고 넘어야 했다. 이 길의 중간쯤, 바위 한켠에 ‘권중웅’옹의 불망비가 박혀 있다. “님은 생전에 무척도 산을 좋아하시더니 끝내 이곳에서 산과 하나가 되셨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 동부고속 호남정맥산우회가 1995년 10월에 새긴 비문이다.

사람은 죽어서도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기억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도 과연 인연이련가? 안타까운 글귀는 앞으로 남은 산행을 조심스럽게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불가에서는 전생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맺어진다고 한다. 끝없이 윤회되는 인연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모든 사물과의 관계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저 망자는 죽어서도 기억되기를 원했을까? 아니면 살아남은 자들이 망자를 기억 하도록 하였을까?

나무계단을 내리고 잘 닦아진 오솔길을 따르면 정자와 벤치가 있는 쉼터가 나온다. 산을 찾는 사람을 위한 장흥 로타리 클럽의 살가운 정이 배어 있는 곳이다. 얼마 남지 않는 감나무 재로 내리는 길은 新作路처럼 잘 닦아 놓았다. 4차선 터널 위를 지나 국도 2호선상의 갑낭재에 이르는 것으로 오늘 산행의 점을 찍는다.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산행이 시작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혼자 길을 간다고 할지라도, 주위와 관계지어 지기에 절대로 혼자가 아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은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동행하려한다. 그래서 산행은 힘겨워 하는 동행을 마음이나 배낭 끝에 매달고 정담을 나누며 나무가 되고, 풀이 되고, 나중에는 산이 되면서 함께 어울리며 걷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도우며 버팀이 되어야만 살아 갈 수 있기에 사람(人)이라 한다던가? 먼저 내린 팀과 후미를 기다리며 신록의 나무 그늘에 앉아 넘기는 시원한 음료의 맛은 7시간의 산행의 피로를 날아가게 한다.

박길만
광주토요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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