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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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풍성한 빈터를 보고, 품다
광주토요산악회 두륜산과 대흥사

  • 입력날짜 : 2013. 11.27. 00:00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산행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쉼’의 여유와 ‘숨’의 지혜를 알려주는 소중한 교육이다. 오르고 내림의 집착을 버리면 놓음과 비움이 저절로 오는 것. 산은 어쩌면 인생의 거울이 아닐런지….
광주토요산악회 이번주 산행은 ‘서산 팔봉산·간월암’입니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산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의미와 가치를 간직한 산인줄을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번주는 전국의 어느 산 보다도 선열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지나간 역사의 늪에 잠시 머무르는 시간을 갖기위해 해남의 두륜산을 찾기로 하고 주작산과 두륜산을 들고나는 오소재에 이르렀다. 길 양쪽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붉게 물들인 잎을 나부끼며 나보란듯이 길손을 맞이하는 단풍나무의 도열을 받으며 물맛이 최고에 이른다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잘 다듬어진 완만한 등행로를 따라 오심재로 향한다.

가련봉 정상에서 바라 본 대흥사.
다리쉼을 해 가며 30여분이 채못돼 헬기장이 있는 널따란 오심재에서 숨을 고르고 노승봉으로 향하는 나무터널과 가파른 바윗길을 쇠줄과 실강이 하며 오르면 가슴이 툭 트이는 노승봉 정상이다. 구름 한점없는 맑은 하늘아래 사방으로 탁 트이는 조망은 가히 절경이 따로 없음이다.

고개를 돌려가며 눈길 닿는 곳마다 가슴 시원한 절경이 두 눈 가득이다.

강진만을 비롯해 완도, 그리고 들녘에는 하얀 볏짚더미가 띄엄띄엄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농부들은 이름하여 공룡 알이라 부른단다. 오색 조개 껍질을 엎어놓은 듯한 농촌마을의 풍경들이 지금까지의 노고를 보상 해 주는가 싶더니 옷깃을 여미며 파고드는 시원한 바람은 온 몸은 물론 간담까지 서늘하게 해 준다.

발 아래로는 고즈넉스럽게 자리한 대흥사 가람들이 내려보이고 진행방향 건너로는 가련봉이 손에 닿을듯 하다. 두륜산은 원래 대둔산이라 불리웠으나 백두산의 두(頭) 와 상상의 산인 곤륜산의 륜(崙)자를 따서 두륜산으로 불려졌으나 후일 두륜산의 연봉들이 소쿠리처럼 둥글게 휘돌아진 모습이여서 바퀴륜(輪)를 쓰게 됐다는 것이 산 이름의 내력이다.

늦가을 산행은 만산홍엽의 절경이 제맛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은 등산객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정상인 가련봉(703m)으로 산 길을 서둘러 잡아 보지만 좁다란 산길은 전국에서 찾아든 산객들로 일방통행이 되어 심한 정체를 이루지만 그때마다 주변 경관을 두눈 가득히 담고 있노라면 기다림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 옛날 산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올렸다는 정상 가련봉이다. 조망이 아름다운 바위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대흥사를 내려다 보며 잠시 옛날을 더듬어 본다.

묘향산 보현사에서 입적하기전 서산대사는 자신의 가사와 바리때를 대둔사에 전하라 하면서 “내가 알기로는 철마다 기이화초가 피어나고 주위의 산들이 하늘과 지축을 떠 받쳐주고 먹을것이 풍부할뿐 아니라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여 만세에 허물어지지 않을 불훼지지의 땅이니 장차 종통(宗統)이 거기로 돌아 갈 것이다” 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산대사는 고향이 평남으로 조선불교의 큰 맥을 이룬 대승으로 임진왜란 당시 73세의 나이지만 승병을 일으켜 명군과 합세하여 한양수복에 큰 공을 세워 ‘국일도대선사…’란 20자의 긴 이름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서산대사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두륜산은 임진왜란도, 6·25도 비켜갔다. 대둔사(대흥사)가 낳은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로 불리는 고승대덕들이 이곳에서 용맹정진 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러 배출했다.

대흥사 입구에 안내판을 보면 오른쪽 두륜봉은 부처님의 머리요, 가련봉과 노승봉은 가슴에 모은 양손, 고계봉은 발끝 모양이라 기록돼 있다. 가만히 보면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다.
이름난 고승 중에는 단연 초의선사를 빼 놓을 수 없다. 초의는 다도를 알고싶어 하는 홍현주를 위해 동다송(東茶頌)이란 명저를 남기고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키면서 당시의 명사들과 교분을 나누는 등 詩·禪·茶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고있던 동갑내기인 추사 김정희와의 친교는 물론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용과는 스물 다섯살이나 위인데도 나이를 초월해 각별한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의는 대둔사(대흥사)에서 촉망받던 학승이였으나 어느날 일지암을 짓고 은둔해 버렸다고 전한다. 유·불·선에 통달한 그는 불가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불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불·선을 통섭한 인물로 알려진다.

초의로 하여금 빛을 발한 대흥사에는 조선 후기의 서예전시장을 만들어 놓기도 했으니 말이다. 일행의 부름에 정신을 가다듬고 철사다리를 조심스럽게 내리니 널따란 만일재가 억새를 품에 안은채 포근하게 내려다 보인다.

다리쉼을 하고 천년수를 지나 자연을 훼손해 가며 중생들로부터 불심을 얻기 위함인지 개설된지 얼마 안된듯한 콘크리트 길을 따라 내리니 대흥사 경내로 발길은 자연스레 들어서고 있다.

조선시대 불교가 쇠잔 해 질 무렵 유·불·선(道)을 가리지 않고 명사들과 교분을 나누며 불교 중흥에 박차를 기했던 초의선사를 생각하며 박물관의 서산대사의 유품을 시작으로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류의 현판은 당시 동국진체를 독자 개발했다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이며, 정조가 친히 써 내려 줬다는 표충사의 현판을 비롯해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글씨이고, 대광명전과 표충사 보장록은 위당 신관호의 글씨고, 초의선사의 초상화는 소치 허유의 그림이라니 올려다 보고 쳐다보는 나그네의 마음은 그저 숙연 해 질 따름이다.

두륜산 연봉을 즐거운 마음으로 샅샅히 넘고 돌아 내리며 생각하니 옛스런 향기가 물씬 풍기는 경내를 돌아보고 대웅전을 뒤로하고 무뎌진 발걸음으로 곱게물든 단풍나무 사이를 헤집으며 천왕문에 들어서니 사천왕만 두 눈 부릅뜨고 길손을 응시하는데 고색창연한 대흥사 천년의 불향은 부도의 푸른 이끼 속에 잠 깰줄을 모르는듯 싶어 일주문의 문턱을 넘으려는데 가슴을 때리는 소리가 울린다.

‘나 거기 있고 너 여기 있구나’, 견성성불(見性成佛),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던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단다. 부질없는 세상사 할 일도 많건만 집 나선 나그네 피곤함에 분망하여 무딘걸음 재촉하려는데 부처님의 말씀에 정신을 가다듬고 ‘산은 산이요 술은 술이로다’를 미소로 답하며 산책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을 내 딛는다.
박길만 회장
/박길만 <광주토요산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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