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5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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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 일본 전수…아스카문화 융성 주역
[]전라도 정도 1천년] 제2부 천년의 인물-(2)왕인박사
영암 출신…유학·경전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 등용
직공·도공·양주자 등과 도일…고대문화 발달 큰 공헌
일본인들도 1937년 우에노공원에 ‘박사 왕인비’ 건립

  • 입력날짜 : 2017. 01.30. 20:01
영암 출신 왕인박사는 탁월한 식견으로 백제문화 발전은 물론 일본 태자의 스승 및 고대문화 융성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4월 영암에서 열린 왕인문화축제에서 왕인박사가 일행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는 퍼포먼스(왼쪽)와 왕인문화축제퍼레이드 장면.
백제문화의 우수성은 세계가 깜짝 놀람만큼 화려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 중심에는 왕인박사가 있다. 영암 출신의 왕인박사가 활동했던 근초고왕 때는 백제가 융성했던 시기로 문화도 대단히 발달했다.

당시는 일본과 백제의 문화교유가 왕성했다. 이때 아직기가 근초고왕의 지시로 말 두필을 끌고 일본에 건너가서 왕에게 바친 뒤 말 기르는 일을 맡아 봤는데, 말지기 아직기가 경서에도 능통한 것을 안 일본 오진왕이 태자 토도치랑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후 아직기가 임기를 끝내고 고국에 돌아오게 되자 일본왕은 신하를 보내 학덕 높은 학자를 일본에 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왕인 박사가 추천됐다.

왕인 박사의 탄생일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백제 제13대 근초고왕(서기 346-375년)때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18번지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생가 앞으로는 맑은 성천(聖川)이 흐르고 그 건너편으로는 월출산의 지맥이 자리 잡고 있었다. 8세 때 월출산 주지봉 기슭에 있는 문산재에 입문했다. 그 당시 문산재는 예로부터 수많은 선비와 명유(名儒)를 배출한 학문의 전당이었다. 왕인은 그곳에서 유학과 경전을 수학했는데,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나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됐다.

왕인 박사는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일본왕의 태자 토도치랑자의 스승이 됐다. 경서에 통달했던 왕인은 일본의 요청에 의해 군신들에게도 경서와 역사를 가르쳤다. 이후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일본 가와치에 살면서 기록을 맡은 역사가가 됐으며, 일본 조정에 봉사해 일본 고대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본 역사책 ‘고사기’에는 그의 이름이 ‘화이길사’ 또는 ‘백제국왕 조고주’로, 일본서기에는 왕인으로 기록돼 있다. 또 고사기에는 백제 근초고왕 사람으로 기록돼 있고, 일본 서기에는 이신왕 말년께에 일본으로 건너 온 것처럼 기록돼 있어 전후 30-40년 차이가 있다.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일본과 백제의 교류는 더욱 활발해 졌다. 오경박사를 비롯해 재봉녀, 직공, 야공, 양주자, 도공, 안공, 화원, 금공, 의사 등이 일본에 건너가서 백제문화를 전수, 일본의 고대문화 발달에 큰 공헌을 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문화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왕인박사와 함께 건너간 도공 등 기술자였던 것이다.

그 후예들이 오늘날 일본 나라문화와 관동문화를 일으켜 일본 문화의 뿌리를 이뤘다.

일본사람들은 왕인을 오래전부터 기리고 있다. 1937년 일본 우에노공원에 ‘박사 왕인비’를 세웠다. 일본인들은 이 비에 공자의 위덕과 필적할만 하다고 다음과 같이 적고, 박사 왕인을 거국적으로 숭모하고 있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태어나 만고불후의 인륜도덕을 밝혀 천하만세에 유림의 시조가 됐다. 박사 왕인은 공자가 죽은지 760년 후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황실의 태자들에게 충신효제의 공자 도를 가르쳐 널리 일본에 전수, 1653년간 전승시켜온 것이다. 천고에 빛나는 왕인박사의 위덕은 실로 유구위대함이 그지 없었다.’/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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