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0일(화요일)
홈 >> 기획 > 전라도 定道 1천년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
[전라도 정도 1천년]제2부 천년의 인물-(3)장보고
1천200여년 전 한민족 바다로 뻗어야 번영 입증
완도에 청해진 건설 황해 무역로 보호·해적 근절
동아시아 해상왕국 군주이자 미래 내다본 선구자

  • 입력날짜 : 2017. 02.12. 19:40
완도군 장보고기념관의 내부 모습. 장보고는 1천200여년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며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보고는 신라시대의 무장이다. 당시 외국과의 교류는 물론 국내에서도 문물교류가 활발하지 않았지만 우리 민족이 바다로 뻗어야 번영할 수 있다는 진실을 1천200여년 전에 증명한 인물이다. 그는 청해진(현 완도) 출생으로 780년대 후반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기골이 장대했으며 활과 창을 잘 다루는 무인 기질을 타고 났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활을 잘 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는 궁복(弓福), 궁파(弓巴)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활을 잘 쏘는 사람인 ‘활바’ 또는 ‘활보’라는 이름을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유래된 이름이다.

장보고는 어려서부터 무예가 뛰어났고 물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기에 친구 정년과 함께 당나라에 건너가 생활하다 서주 무령군에서 복무해 장교가 됐다. 당시 당나라는 각지에 절도사가 할거하고 있었다. 해안지역 출신으로 바다에 익숙했던 장보고는 해상무역에 대해 깊은 인상과 이해를 터득했다.

그 무렵 당나라나 신라 모두 중앙집권력이 이완돼 흉년과 기근이 들면서 전국 각지에서 도적이 횡행했다. 바다에서도 해적이 신라 해안에 자주 출몰해 많은 주민들을 납치하고 중국의 노예로 팔았으며, 무역선도 해적의 위협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장보고는 신라인에 대한 해적의 포획에 대해 분노했고, 국제무역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가졌으며, 스스로 해상권을 통괄해 독자적인 세력을 키워볼 야망을 불태웠다.

그러나 중국에서 입신하지 못하고 828년 귀국했다. 장보고는 왕에게 남해의 해상 교통요지인 완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해 황해의 무역로를 보호하고 해적을 근절시킬 것을 주장했다. 그는 왕의 승인을 받아 지역민을 규합해 일종의 민국조직으로 1만여명의 군대를 갖추고 완도에 청해진을 건설했다. 청해진은 처음부터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세력의 성격을 갖췄다.

그는 청해진을 건설한 뒤 곧 해적을 소탕하고 동지나해 일대의 해상권을 장악했다. 이 해상권을 토대로 당·신라·일본을 잇는 국제무역을 주도했다.

완도 청해진 옛터에 설치된 장보고 동상.
장보고는 무역과 함께 외교 교섭까지 시도했다. 일본에는 회역사를 보내 외교교섭을 했으며, 당나라에는 견당매물사의 인솔하에 교관선을 보내 교역을 활발히 했다. 또 산동성 문등현 적산촌에 법화원을 건립하고 이를 지원했다. 법화원은 상주하는 승려가 무려 30여명이며, 연간 500석을 추수하는 장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역 신라인의 정신적인 중심지로서 법회때는 한꺼번에 250여명이 참석했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장보고의 세력은 신라인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장보고의 강력한 군대는 많은 선박을 보유하고 부를 축적해 하나의 큰 지방세력으로 성장, 중앙정부의 정치적 분쟁에도 관여하게 됐다. 흥덕왕 11년 수도에서 왕위계승분쟁에 패배한 김우징 일파가 청해진으로 피난 와 그에게 의탁했다.

이어 희강왕 3년, 왕위를 둘러싼 분쟁이 터져 왕이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했다. 이 정변을 틈타 장보고는 김우징 일파를 강력히 지원해 군대를 보내 경주로 반격하게 해 김우징이 왕으로 즉위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신무왕은 그를 감의군사로 삼는 동시에 식실봉 이천호를 봉했고, 그의 세력은 중앙정부를 위협할 정도가 됐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중앙 귀족들은 그의 딸을 문성왕의 비로 맞은 것을 반대했다.

그 뒤 청해진과 중앙정부 사이에는 대립과 반목이 심화돼 갔다. 그러자 중앙정부는 한때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을 보내 그를 암살하게 했다. 그가 암살된 뒤 그의 아들과 이창진에 의해 그의 세력은 얼마동안 유지돼 일본에 무역선과 회역사를 보내 교역을 계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염장을 비롯한 중앙군의 토벌을 받아 청해진은 완전 궤멸됐다. 문성왕은 청해진주민을 김제로 이주시키고 청해진을 없애버렸다.

장보고는 불의에 피살됐지만 신라 말기 각지에서 등장한 호족세력의 선구적 존재였다. 부하에 의해 암살되기 까지 장보고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남도 작은 섬마을 소년이 동아시아 해상왕국의 군주로 올라섰다가 군인 정치가 항해가 기업가로 변신하면서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을 미리 내다본 선구자였다.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오성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