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1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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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절의·문장 겸비한 장성 출신 ‘성리학 대가’
[전라도 정도 1천년]제2부 천년의 인물-(4)하서 김인후
19세때 과거 장원·성균관서 임금에 ‘군자의 도’ 진언
중종 윤허 않자 ‘부모 연로’ 사직요청 옥과 현감 제수
과학이용 우주진리 풀어내기도…시 1천600여수 남겨

  • 입력날짜 : 2017. 02.28. 19:52
하서 영정
광주에서 황룡강을 따라 장성 맥동마을로 가면 거북등에 세워진 비(碑)가 하나 있다. 자세히 보면 송시열이 쓴 글이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인물 중에서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겸비한 탁월한 이는 그다지 찾아볼수 없는데 하늘이 우리 동방을 도와 하서 선생을 종생하여 이 세가지를 다 갖추케 하였다.’

조선 중기 호남 북쪽에는 이항, 충정에는 조식, 서울에는 이이가 있었다는 역사적 평가에서 보여주듯 김인후의 학덕은 크고 넓었다.

김인후는 1510년 전라도 장성현 맥동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5대조 김온은 서울에서 살았으나 세자 책봉에 연루돼 사사되자 가족들은 전라도 장성으로 이주해 살았다. 그의 부친은 종9품의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김인후는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당시 전라도 관찰사 김안국에게 지도를 받았다.

5살이 되던 해 정월 보름날에 아래 한시를 써서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다.

“높고 낮음은 땅의 형세요(高低隨地勢)/이르고 늦음은 하늘의 때라(早晩自天時)/사람들 말이야 무슨 험 되랴(人言何足恤)/밝은 달은 본래 사심이 없도다(明月本無私).”

그는 1528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황(李滉)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는 훈구 재상들이 젊은 문신들을 내 몰아 죽이거나 혹은 유배시켰다. 기묘사화가 일어나 참화를 당했던 일군의 뛰어난 선비들이 정치사회의 혼란에서 뜻을 펴지 못한 채 은거해 독서에만 전념했던 시기다. 그는 19세에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 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서울서 생활했다. 그런데 기묘사화가 일어난지 20년 되는 해 동국에 큰 불이났다. 아무도 조광조 등 사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거론을 못하던 때 하서가 나서서 왕에게 군자의 도를 진언했다.

하서 김인후 선생과 고암 양자징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우동사.
“예로부터 선치(善治)하는 군주는 어진 인재를 가까이하며 선비의 풍습을 바르게 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어진 인재를 가까이 하면 임금을 도와 백성을 교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선비의 풍습을 바르게 하면 사람이 지킬 떳떳한 윤리가 밝혀져 세상을 두터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번 기묘사화는 죄가 아니심을 밝히시고 날로 두려운 마음으로 정의와 악을 잘 가려서 사회 기강을 세우시옵서소.”

그러나 중종이 이 상소를 흔쾌히 윤허하지 않자 하서는 부모의 연로함을 이유로 사직을 요청하니 옥과 현감에 제수됐다. 시대는 어지럽고 또 어지러웠다. 인종의 죽음을 기화로 하서는 36세에 벼슬을 그만둔 후 45세까지 수차에 걸쳐 나라의 부름이 있었지만 극구 사양하고 순창에 초당을 짓고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불현듯 실망을 떨치고, 심신을 가다듬어 학문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태극도설’과 ‘서명’을 완역해 수천번 읽더니 48세에 ‘주역관상도’‘서명사천도’를 저술했다.

이를 배우는 자들에게 “태극은 덕성의 근본이요, 서명은 학문의 강기니 어느 한쪽도 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죽통을 부레로 연결시켜 둥근 하늘의 형체같이 만들고 배분을 사용해 그 위에 그리되 일월성신이 북극을 잡고 빙둘러 한바퀴 돌면 좌시하는 형상과 같은 도표를 짜냈다. 우주의 진리를 과학을 이용해 풀어내는 작업을 16세기 하서가 해낸 것이다.

특히 하서는 저서를 통해 유교적 입장에서 불교를 혹독하게 비난했다. 불교의 출가 삭발은 제 몸 하나 편하자고 천리를 어겨 인륜은 끊고 부모에게 받은 몸을 해하는 것으로 큰 불효라고 했다. 꺼진 불이 다시 타지 못하고 마른 물이 다시 흐르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을 이 세상에 한번 태어나서 살다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는 것. 따라서 불교의 윤회설, 극락이나 지옥은 있을수 없으며, 말로만 있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물질의 진료라 할 수 있는 기(氣)가 없어지면 그에 따라 그 물질의 존재의 운동의 까닭인 리(理)도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그는 ‘무에서 무엇을 얻느냐’며 불교의 공사상까지도 공격했다.

논설과 의리가 평이하고 명백했던 김인후는 1560년 정월 ‘내일은 보름이니 정성들여 생수를 갖춰 사당에 행전케하라’더니 의관을 단정히 하고 무릎을 꿇고 제사를 모시면서 자녀에게 “내가 죽으면 을사년 이후의 관작일랑 쓰지 말라”고 우연하고 이튿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하서 김인후(1510-1560)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장성군 황룡면 소재 필암서원(筆巖書院)./광주매일신문 DB
서슬퍼런 임금의 폭정을 피해 고향에 칩거하면서 집안 다스리기를 나라 다스리듯 했던 냉철한 하서 김인후는 지식과 행동, 내면과 외면의 수양을 다같이 중시한 선비로 ‘행(行)에 열심이고 지(知)에 간력하며 안에 소홀하고 밖에 힘쓰는 선비들을 자주 꾸중하곤 했다.

그가 남긴 1천600여수의 시를 보면 침묵의 언어를 알 것 같다. 준엄한 언어로 인간 내부에 잠적된 영혼의 육신을 회생시키는가 하면 지극히 감미로운 사랑의 훈육으로 존재의 깊은 심연을 느끼게 한다.


매년 봄 필암서원서 하서 추모 춘향제

하서 김인후를 기리기 위한 춘향제(春享祭)가 매년 봄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사적 제242호)에서 열린다.

춘향제는 제물을 바치는 봉진례(奉進禮), 비단을 바치는 전폐례(奠幣禮), 술잔을 바치는 초헌례(初獻禮·첫 잔을 올리는 예), 아헌례(亞獻禮·두 번째 잔을 올리는 예), 종헌례(終獻禮·마지막 잔을 올리는 예)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지난해 4월26일 열린 춘향제에는 정환담 필암서원 산앙회장, 정운염 오인균 필암서원 도장의,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형관 광주향교 모성회장, 윤용훈 대전 유림 원로, 유두석 장성군수, 김인수 울산 김씨 문중 도유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당시 초헌관을 맡은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서원 내 청절당에서 ‘하서 선생 천명도(天命圖) 제사(題辭)에 대한 재해석’을 주제로 강론했다. 송 명예교수는 “하서 선생은 성리학의 최대 화두인 이(理)와 기(氣)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으며 태극(太極)에 대한 이론에도 식견이 높아 천명도(天命圖)를 완성했다”며 “제사는 천명도를 간단하게 해석한 7행의 글”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타고난 본성을 원만하게 실현하는 성자(聖者)라야 눈에 보이는 만물 창조의 이법인 천명을 통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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