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6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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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천년]제2부 천년의 인물-(10)초의선사
조선후기 대선사…‘다도’ 정립·‘회화’ 능통
‘선·다선일미’ 사상 집약…실질적인 남종화의 시원
‘운수행각’ 선지식 찾아다니며 정진 경·율·론 통달
해남 두륜산 암자서 홀로 30년간 두문불출후 입적

  • 입력날짜 : 2017. 06.26. 19:56
무안군 삼향읍 왕산리에 복원된 초의선사 유적지. 초의선사는 이곳에서 태어나 15세에 출가해 참선과 수행을 통해 다도(茶道)를 정립하고 회화에 능통해 조선 후기 대선사로 명성을 떨쳤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 대선사로서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정립한 분으로 꼽힌다. 그래서 초의를 다성(茶聖)이라 부른다.

초의선사는 1786년(정조 10년) 무안에서 태어났으며, 성은 장(張)씨 법명은 의순(意恂), 자는 중학(中學)이다. 그의 가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다.

선사는 5세때 강변에서 놀다가 급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을 지나는 승려가 건져줘 살게 됐다. 이 사건으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암자에 살고 있던 그 스님은 생명의 은인으로 모셔지고 초의의 집안과는 자주 왕래하는 사이가 된다. 그 승려가 출가할 것을 권해 15세에 남평 운흥사에서 민성을 은사로 삼아 출가하고 19세 때 영암 월출산에 올라 해가 지면서 바다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집안 식구들에게 충격을 줬고 유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영민했던 어린 소년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게 된다. 출가 동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열다섯살 때 스님의 권유로 집을 떠나 남평 운홍사 벽봉 스님에 의해 출가를 했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 초의대선사상.
초의는 남평에서 행자생활을 하다 절을 나와 해남 대흥사로 가던 도중 월출산을 보고 불현듯 정상에 오른다. 그는 그곳 산세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다 마침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맺혔던 가슴이 툭 터진다. 대흥사에서 완호대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받고 초의라는 당호를 얻는다. 여기서 불교의 심장을 수학하고 대교 과정을 마치게 된다. 이후 운수행각(雲水行脚)으로 여러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정진해 경(經)·율(律)·론(論) 모두에 통달했다.

스물두살이 되자 잠시 화순 쌍봉사로 옮겨 금담선사로부터 선을 배우며 토굴에서 정진 수행하다 다시 대흥사로 돌아와 연담 선사에게 나아간다. 이 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다산 정약용을 대면하게 된다. 초의는 자신보다 25세 연상인 다산에게서 유학과 시문을 배우면서 함께 월출산 백운동에 들어가 월출산의 비경을 화폭에 담아 ‘백운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30세 때는 처음으로 상경해 완당 김정희를 만난다. 그가 상경해 성밖 청량사에 머물자 장안의 명사들이 몰려들어 시회(詩會)와 다회(茶會)가 성황을 이뤘다. 당시 초의가 교유한 인사들은 당대의 일급 지식인 그룹에 속하는 명사들로 정약용의 자제들, 추사 김정희와 그 형제들, 연천 홍석주의 형제, 신관호, 권돈인 등과 교류, 정신세계의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특히 화가로서 초의는 한국 회화사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초의는 낭암스님으로부터 탱화라고 불리는 불화를 전수 받으면서 그림을 시작,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갔다.

현재 대흥사에 있는 탱화와 전국 곳곳에 있는 사찰의 많은 불화가 초의의 작품이거나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에 의해 제작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50세가 된 초의가 일지암에 있을 때 진도에 살고 있는 소치 허유가 선사를 찾아와 그림을 배우니 초의는 몸소 가르치면서 추사에게 보내 사사케하고 당시 많은 서화 묵개들과 교유시켜 화가로서 대성하게 한다.

마침내 소치는 헌종 임금께 나아가 그림을 그려 총애를 한 몸에 받는다. 남종화의 종주 소치는 이후 직계 자손인 미산, 남농, 임전 등으로 남종화를 뿌리내리니 초의는 실질적인 남종화의 시원인 셈이다.

초의의 사상은 선(禪)과 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으로 집약된다. 특히 그의 다선일미 사상은 차를 마시되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맛본다는 것이다. 즉 차(茶) 안에 부처의 진리(法)와 명상(禪)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차의 진예(塵穢, 더러운 티끌 먼지)없는 정기(精氣)를 마시거늘 어찌 큰 도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겠는가(榛穢除盡精氣入, 大道得成何遠哉)라고 했다. 승려에게는 차(茶)와 선(禪)이 둘이 아니고 시(詩)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詩)와 선(禪)이 둘이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등나무와 담쟁이덩굴 그늘 속의 두륜산 정수리에 작은 암자를 짓고 현판을 일지(一枝)라 하더니 홀로 30년 동안 두문불출하다 입적했다. 1866년 고종 3년. 세수 81년. 법랍 65년.


삼향읍 유적지에서 열린 초의선사 탄생문화제 장면.
무안, 매년 5월 초의선사 탄생문화제

무안군은 초의선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를 매년 5월 실시한다.

올해도 지난 5월1일 초의선사의 탄생 231주년을 기념하고 선사의 차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초의선사 탄생문화제’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삼향읍 왕산리에 위치한 초의선사 탄생지 일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군민 등 1천여명이 참여해 선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선다일여(禪茶一如)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올 문화제 제천다례, 별빛차회 등 전야제를 시작으로 행사 당일에는 초의선사 헌다의식 및 제물 봉헌의례, 5법공양 헌다례 등의 의식이 진행됐다.

또한 청소년 글짓기 및 사생대회, 서화 탁본, 초의 붓글씨 쓰기 등 부대행사와 차 음식, 차 도구 등 차에 대한 다양한 볼거리와 결계수인 만들기, 자기 나무심기 등의 체험행사도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여느 흥미위주의 축제에서 벗어나 관광객들이 다도를 체험하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함양할 수 있는 차 문화제로서 정착해가고 있다는 평가다.
/오성수 기자 star555@kj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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