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2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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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관광광주’의 갈 길을 생각한다
이경수
기획실장

  • 입력날짜 : 2017. 07.17. 18:48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7월 둘째 주말에 대구를 다녀왔다. 올들어 여행의 주제를 ‘힐링’으로 잡고 짬 날 때마다 전국의 유명 생태원과 수목원, 휴양림을 찾고 있는데, 한 여름에 도심의 거리로 들어선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덥다는 대구를 하필 염천에 간 특별한 이유나 목적은 없었다. 다만 그 곳을 다녀 온지 어느새 네댓 해가 훌쩍 지난 것 같아 다시한번 가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대구로 가는 여로는 부담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운 뒤 큰 맘 먹고 가야하는 먼 길이었다. ‘마의 도로’로 악명 높았던 88고속도로가 확장공사를 마친 뒤 광주대구고속도로라는 새이름을 얻은 이후 이 길은 2시간30분이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됐다.

대구에서는 여정은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했다. 이게 아주 편리했다. 대구의 주요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심순환코스와 테마여행, 골목투어 그리고 대구근교권을 돌아볼 수 있는 코스 등 4개의 시티버스가 여행자를 맞고 있었다. 필자는 이 가운데 도심순환코스를 선택했다.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버스는 동성로와 근대문화골목-서문시장-앞산전망대-수성못-김광석다시그리기길을 거쳐 출발지로 돌아오는 코스로 운영되고 있었다. 모두 14곳에 정차장이 있으며, 5천원만 내면 하루종일 어디서든 타고 내릴 수 있다. 차량은 40분 간격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원하는 곳에서 내린 뒤 빠르면 40분, 좀 더 여유를 부리면 80분간 명소를 둘러 본 뒤 예정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버스를 타면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경상감영공원에서 내린 필자는 먼저 대구문학관에서 새로운 대구의 모습을 만났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시로써 저항하고 소설로 민족혼을 지펴온 시인 이상화, 소설가 현진건을 비롯 문학의 씨앗을 뿌린 지역의 문인들의 흔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새로운 문학의 향기를 맡은 다음 찾아간 근대문화골목에서는 문화도시 대구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민들의 힘으로 보존하게 된 이상화 고택이나 일제강점기 민족자강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인물인 서상돈의 고택은 여전히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골목의 담벼락에 그린 벽화도 친근하게 여행자를 불러들였다. 근처에 자리잡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을 걸으면서 개화기의 선교사들의 역할과 대구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대구시티버스투어의 마지막은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서 마무리지었다. 이 곳은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로 유명한 고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그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이다. 발을 꼬고 앉아서 기타를 치고 있는 김광석의 동상이 반기는 입구에서부터 350m 길이의 벽면을 따라 그의 조형물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등 다양한 모습과 그의 노래 가사들이 벽화로 그려졌다. 관광객들은 이 거리에서 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를 따라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근래 이곳은 이른바 핫하게 뜬 대구의 대표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대구의 명물 납작만두로 입을 다시고 골목안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주문하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해 보니 ‘재발견’으로 결론지어졌다.

대구를 다녀온 뒤 필자는 다시한번 시간을 내어 광주 양림동을 돌아봤다. ‘근대로의 여행’을 주제로 내건 대구와 비교해 양림동의 근대역사는 결코 빠질게 없다. 100여년 전 광주를 비롯한 전남 지역 근대화의 물꼬를 튼 유적들이 가슴 찡한 이야기와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웬기념각, 우일선 선교사 사택, 배유지 기념예배당 등 교육과 의료에 큰 역할을 했던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시간의 보물상자를 여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양림동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미술관·도서관이 자리잡고 문화의 품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뭔가 빠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나날이 들어서는 특색없는 커피집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눈을 돌려, 아시아문화수도라고 자랑하는 광주의 현실은 어떤가. ‘세계를 향한 아시아문화의 창’이라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의 미래를 확 바꿀 문화산업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재까지는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광주의 문화수준을 이끌어가기는커녕 지역민과 함께하려는 노력조차 등한시한다는 지적이다. 광주시민들 또한 뜻과 의지 하나 결집시키지 못해 문학관도 아직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향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구호하나 없이, 그렇다고 유구한 역사를 들먹이지 않고 ‘근대로의 여행’이라는 100년 남짓한 과거와 그 유산만으로 큰 울림을 주는 대구관광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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