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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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놀게하라
정우범
화가

  • 입력날짜 : 2017. 09.07. 19:06
간혹 어린 시절이 꿈처럼 떠오르곤 한다. 내 고향 전라도 무안 산골마을 동네 입구에는 500여년을 지켜온 느티나무가 있고 넓지 않은 논밭이 눈에 잡힌다. 꼬막처럼 엎드린 지붕의 고향마을이 기억 저편에서 꿈틀거리며 되살아난다.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정말 꿈같은 시절이었다. 그 때 우리는 동무들끼리 떼를 지어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먹고 살기 바쁜 그 시절에 놀이 시설이란 게 있을 수 없었고, 간식거리도 따로 있을 리 없었다. 우린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다가 산딸기도 따먹고 삐비 꽃도 따 먹었다. 들로 뛰어다니다가 콩과 보리를 불에 익혀 먹으면 단순히 배고픔만 잊는 게 아니었다. 정말 맛있었다. 두 손은 물론이고 입 주변이 시커멓도록 불에 태운 콩과 보리를 먹곤 했었다. 우린 그렇게 대 자연의 품속에서 놀았다. 배고픔을 자연 속에서 해결했다. 만들어져 있는 놀잇감이 어디에 있었겠는가. 모두 우리 손으로 만들어서 놀았다. 겨울엔 팽이와 연을 만들었고 여름엔 개울물을 막아 물속에서 눈뜨고 송사리를 잡았다. 산골이 모두 우리의 놀이터였고 자연의 결실이 우리의 간식거리였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언젠가부터 창의성을 개발해야 한다. 창의교육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이젠 산업시대가 아니다. 단순 암기로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느냐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보는 널려 있기 때문에 그렇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널려있는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다양한 경험을 가질 것인지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창의성은 보석과도 같은 요소다. 단순한 정보와 지식은 그다지 높은 가치를 얻지 못한다. 같은 정보라도 이걸 어떻게 활용하고 엮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은 미래 사회를 새롭게 만드는데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도나도 창의성을 최고로 꼽는다. 아이들에게도 창의성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게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창의성을 길러내기 위해선 뛰어놀게 해야 한다. 놀잇감을 직접 만들어 놀았던 게 어린 시절 우리네가 겪었던 경험이다. 그리고 한없이 놀았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모든 놀이 재료가 다 만들어져서 문구점에서 또는 슈퍼에서 판매한다. 아이들은 쉽게 돈으로 그걸 사고 단순히 그걸 가지고 놀 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싫증나면 별 고민 없이 쉽게 버린다. 직접 만들어서 놀았던 시절, 우린 감히 버리지 못했다. 만드는 과정에서 얼마나 애지중지했으며 만들고 난 후에도 귀한 대우를 하곤 했었다. 간혹 동생이 잠깐이라도 가지고 놀고 싶어 해도 주질 못했다. 그처럼 아꼈다. 그리고 문드러지도록 가지고 놀았었다. 수제로 만들었던 놀잇감은 그래서 집집마다 다 달랐다. 팽이만 하더라도 그 집 아이의 개성이 똑똑 묻어났다. 크기부터 달랐고 팽이의 단면에 그린 그림도 달랐다. 동네 아이들 모여서 팽이를 치노라면 아이의 머리 숫자만큼이나 팽이의 크기와 모습, 형태가 다 달랐다. 그야말로 흙 속에서 마음껏 뒤엉켜 놀았다.

그림을 그린 지 어언 30년이 훌쩍 넘었다. 초등학교 시절 무작정 그림이 좋았다.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나면 으레껏 교실 뒷 벽면에 내 그림이 걸렸다. 몇몇 동무들이 그림과 함께 내 그림이 벽면에 걸린 걸 보면 어깨가 으쓱거렸다. 그래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결국 화가가 되었다. 그 땐 창의성 교육이란 게 따로 없었다. 사는 게, 노는 게 모두 창의성을 길러주는 길이었던 것 같다. 그리운 시절을 떠올리며 왜 사는 거 따로, 창의성 따로 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뛰어놀면서, 놀잇감을 만들면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면서, 창의성을 뿜어냈던 우리 시절을 떠올리면 요즘은 삶과 창의성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따로따로 하는 듯 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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