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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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798예술거리와 문화수도 광주
이경수
기획실장

  • 입력날짜 : 2017. 09.25. 19:44
필자는 최근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을 다녀왔다. 지난 2월 개강 이후 알찬 강의를 통해 인문·경영지식을 향유해온 광주매일신문 제4기 창조클럽 아카데미 원우들과 함께한 해외 문화탐방 여정이었다. 이번 문화탐방의 주요 코스는 중국의 얼굴이라 불리는 천안문광장, 세계 최대의 고궁인 자금성과 이화원 등 베이징의 명소는 말 할 것이 없고, 만리장성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사마대장성에다 최근 새 관광명소로 떠오른 고북수진으로 짜여졌다. 여정 하나하나 모두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 필자가 관심을 갖고 보다 꼼꼼히 답사하고 살펴보고 싶었던 대상은 ‘798예술거리’였다.

기대를 안고 찾아간 798예술거리는 상상 이상이었다. 비가 간간히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예술거리를 누비는 관광객들로 좁은 골목길에 활기가 넘쳤다. 23만㎡의 이 예술지구에는 갤러리와 소공연장, 공방, 예술카페, 레스토랑 등 400여개가 군락을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성공한 예술특구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시발점은 작은 발상의 전환에서 비롯됐다. 798예술거리라는 이름은 기존의 폐 군수공장터 중에 798구역에 있는 공장들을 그대로 살려 전시실 등 예술공간으로 만든 것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 곳은 798공장을 비롯해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무기공장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빈 공장은 당연히 임대료가 쌀 수 밖에 없었다. 작업실이 필요한 가난한 예술인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그러다 2001년 중국 최고의 미술대학으로 알려진 중앙미술학원이 근처로 이전해 오고 유명 예술인들이 가세하면서 급격하게 예술의 거리로 자리잡게 됐다. 결과적으로 임대료가 싼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해 스튜디오나 갤러리로 활용하면서 명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말 그대로 798예술거리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이었다. 길 모퉁이 벤치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판매하는 예술가들이 눈에 띄었다.

길가의 벽에도 현란한 그라피티가 눈을 사로잡았다. 삭막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공장의 내부를 비워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나누어준 점이 인상적이다. 갤러리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전시가 진행되고 유명작가와 관람객들의 만남도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관광객들은 골목길을 꽉 채운 다양한 미술관과 공방, 선물가게를 두리번거리느라 잠시 쉴 틈이 없다. 한 마디로 이곳 798예술거리는 예술이 어떻게 죽었던 도시를 살리는지, 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뉴욕의 소호’에 비견되는 중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잡은 798예술거리를 걸으면서 필자는 자연스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지어놓고 아시아문화수도라 자랑하는 광주의 현실을 떠올렸다. 분명한 것은, 798예술거리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싹 밀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퇴락한 대상일지라도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해 중국 현대미술의 메카로 재탄생시켰다는 사실이었다.

광주를 흔히 예향이라고 말한다. 예술의 향기가 넘치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미술만 보더라도 오지호·양수아 등이 한국근대미술의 뿌리를 내렸으며 이를 자양분 삼아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등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고 있다. 음악, 즉 소리에 대해서도 광주와 남도는 독보적이다. 쑥대머리의 임방울, 판소리 현대화에 앞장선 김연수, 탁월한 명고수 김명환 등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즐비하다. 문학에 있어서도 부족하지 않다. 매일 아침을 기다린 박용철, 혼탁한 문학계에 경종을 울린 김현승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처럼 미술과 음악, 그리고 문학에 이르기까지 풍요로운 자산을 갖고 있는 광주는 문화로 미래를 활짝 열어 가겠다며 문화수도 광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02년 ‘아시아의 문화를 품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출발한 문화수도 조성사업은 오는 2026년까지 추진되는 장기프로젝트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정 사업비는 5조원에 이른다.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그 외형은 일단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광주의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의 중심에 떡하니 들어섰지만 광주 속으로 녹아들지 않았다. 전당장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하고 수개월을 보내는가 하면 세계적인 작가나 음악가를 불러 들여놓고도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다 말기도 한다. 문화전당의 문을 열면 외국인 관람객들로 광주가 넘쳐날 것이라는 기대는 일장춘몽이 된지 오래다.

이 시점에서, 아시아 미술계를 넘어 세계 미술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베이징의 798예술거리가 웅장한 건물을 짓고 떠들썩한 이벤트로 그 역량을 키워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 보면 문화수도 광주의 갈 길도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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