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4일(화요일)
홈 >> 사설/칼럼 > 남성숙칼럼

고향 오는 길, 마음이 지워지는 병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7. 09.27. 19:08
곧 긴 10일간의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에 올 준비를 하는 사람이나 고향에 오는 자식·친지를 맞는 사람이나 참 좋은 가을날이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필자의 친구는 추석에 고향 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시골의 한 요양병원에 모셨기 때문에 추석차례는 생각 못하고 어머니 병문안이 곧 추석 쇠는 일이라 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6개월마다 설·추석에 찾아뵙는데, 뵐 때마다 자식을 몰라보고 뵐 때마다 뼈 가죽만 남은 채 말라가서 차마 제 정신으로 볼 수가 없단다. 추석에 고향 오는 이들 중에부모가 치매에 걸려 오는 길도 가는 길도 무거운 사람들이 참 많을 것이다.

dementia(치매)는 라틴어의 de(아래로)와 mens(정신)에서 나온 단어로, 말 그대로 ‘정신적 추락’을 뜻한다. 다른 설명도 있다. dementia를 뜯어보면 de는 ‘지우다, 없애다’는 뜻이고 ment는 mental에서 보듯 ‘마음’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병을 뜻하는 어미 ‘ia’가 붙은 것이니, 그대로 옮기면 ‘마음이 지워지는 병’이 적당할 듯하다. ‘인지 기능의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치매는 65-74세의 사람 중에서 3퍼센트, 75-84세는 19퍼센트, 85세 이상은 거의 절반이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치매를 둘러싼 비극적 소식도 줄을 잇고 있다. 지역에서도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살한 70대 노인이 있었다. 얼마전에는 유명가수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그의 부모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다. 슈퍼주니어 이특군의 아버지는 힘 닿는데까지 부모를 봉양하였으나, 역부족이었던 듯 자살을 택했다.

의학적으로 치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질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원인에 의한 뇌손상에 의해 기억력을 위시한 여러 인지기능의 장애가 생겨 예전 수준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포괄적인 용어다. 현재 한국 치매환자는 72만5000명으로 2024년에는 100만 명, 2041년에는 200만 명, 2050년에는 271만 명(유병률 15.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비와 요양비, 생산성 손실 등 간접비까지 포함한 치매 환자 1인당 관리비용은 2000만원(2015년 기준) 수준으로, 전체 치매 환자에게 드는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0.9% 정도인 13조2000억원에 달한다. 2050년에는 이 비용이 1인당 3900만원, 전체 관리 비용은 GDP 3.8%에 달하는 106조5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치매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대선공약이었던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했다. 치매안심요양병원을 대폭 확충하고 1:1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며, 치매어르신 모두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장기요양등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중증 치매 환자 치료비용을 본인부담금 10%로 낮추는 등 환자 개인 부담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게 골자다.

청사진이긴 하지만 잘 다듬어 적용하면 환자 본인과 환자가족을 비롯한 주변인 모두에게 정신적·물질적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생활조차도 수행이 어렵고 제어할 수 없는 치매환자 부모와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로부터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며 본인의 사회생활을 감당하기도 어려워지는 상황은 절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도움이 있어야만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가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가 지역사회 치매지원센터를 치매안심센터로 확충·재구축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센터의 기능과 역할이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다. 센터의 본래 기능은 지역사회 치매관리 자원을 결집·동원해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치료 및 요양·돌봄 등 복지서비스를 적절히 받을 수 있도록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을 연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존 치매지원센터는 진료기관으로 오인될 정도로 그 위상이 애매하고, 보건소가 센터를 관리·감독하면서 외부 위탁하는 형태로 운영됨으로써 실적 위주의 검사 건수에 매달려 고유사업을 실행하지 못하는 등 치매관리의 전문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또 치매안심병원을 전국에 설치해 진단 및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공요양병원을 치매안심병원으로 전환한다고 하는데, 치매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신경과 또는 정신과 의사가 적절하게 배치되지 못한다면 정책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철저한 임상적 검증을 하지 않고 치매에 산정특례를 적용할 경우 파킨슨병, 정신분열병과 달리 무분별한 진단의 남용으로 그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이에 따른 건강보험재정의 누수 현상이 발생할 소지마저 있다.

치매국가책임제가 성공하려면 공공과 민간이 협치를 이뤄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이 유기적으로 결합, 의료서비스와 요양서비스를 통합해 수용과 재가, 양자 모두의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이제 더 이상 치매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가정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해 오신 우리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한국현실에 맞는 치매국가책임제의 건강한 모델이 완성되길 바란다. /ssnam48@kjdaily.com


ssnam48@kjdaily.com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