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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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는 역사
조영환
수필가

  • 입력날짜 : 2017. 09.28. 19:01
임진왜란 전과 후는 시대적 변화가 매우 컸다.

1592년 4월 왜군 18만7천명이 700척의 병선을 이끌고 부산포로 쳐들어 왔다. 당시 조선을 지키는 군인은 8천명에 불과했다. 조선병사는 전혀 훈련은 물론 병기도 없었다. 부산포에서 조선의 병사 1천여명은 말만 군이지 오합지졸이었는데 반해, 왜군은 20여만 병력이었다. 그래서 왜군은 17일 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특히 조선의 딸들이 철저히 짓밟혔다. 그때쯤 조선의 북쪽은 조선을 구하겠다고 국경을 침범한 명나라 군대에 처자들이 처참하게 당했다. 왜군이 한양에 도착할 쯤 선조 임금은 이미 북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중이었고 아직 왜군이 한양에 당도하지 않은 시각에 경복궁, 창경궁, 창덕궁이 불길에 휩싸였다. 누가 그런 걸까?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 백성들이 가장 먼저 불태운 관청이 노비문서가 있던 형조의 정예원 이었다.

조선시대 하층부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백성이 그리도 한이 깊었다. 중국의 ‘순자’는 전쟁의 기본은 먼저 민심을 통일하는 데 있다 하였다. 결국 선조는 계속 명나라 땅으로 도망가는 도중 의주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어버이 나라에 가서 죽겠다고 하면서 편지를 쓰는 순간 영의정 유성룡이 선조를 가로막고 일반 백성을 위한 안을 제안했다. “우리 조선 인구 7할이 노비입니다. 이들에게 왜놈 목하나 잘라오면 상을 주고 두개를 잘라오면 천민에서 해방하고 셋을 잘라오면 벼슬을 준다고 하십시오.”

결국 천민들은 귀가 솔깃했다. 후대까지 천민으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천민들은 의병을 지원하거나 이순신 장군 밑으로 들어가 죽자 살자 왜놈에게 덤비니 왜군은 달려드는 조선의 사람들의 속사정을 몰랐을 것이다. 임진왜란 후 5년 뒤인 왜군이 다시 침략하는데 이를 정유재란이라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37년 동안 왕과 사대부는 지난 전란을 교훈 삼기는커녕 왕위 쟁탈전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1636년 12월 청나라가 명나라를 제압하고 나서 조선을 삼킨다. 당시 인조왕은 어떠하였는가. 병자호란 후 45일 만에 항복을 하고 치욕스러운 ‘3배9고드레’라는 항복예(왕이 곤룡포를 벗고 평민 옷을 입고 어가에서 내려 청나라 태종에게 3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위아래로 조아리는 예식)을 치른다. 백성들은 왕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를 바랬다. 이것은 왕에 대한 원망이다. 청나라도 조선의 여성들을 겁탈했다. 일본 왜놈들에게도 성노리개가 되는 비참한 운명을 겪어야 했다. 한민족 남자들 여자 앞에서 큰 소리 쳐서는 안 된다. 병자호란 이후 50만명에 이르는 조선 백성들이 청나라 포로로 끌려갔다. 당시 백성 10사람 중 1사람이었다. 끌려가 청나라 노예로 전락한 셈이다. 1637년 1월 한겨울 심양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도망쳐 왔는데 다시 조선은 돌려보내야만 했다. 그것은 청나라와 협의한 사항이었다. 이렇든 연이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선 백성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양반들의 노비생활, 낮은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숨죽이며 연명해야 했다. 1894년이 됐다. 조선의 지배층은 변하지 않았지만 동학혁명으로 시작한 농민운동이 전국을 뒤집어 가고 있지 않았던가? 이때 고종은 300년 전 선조가 그랬듯이 청나라에 급히 도움을 청했다. 이때 청나라와 왜군이 조선의 땅에서 주도권 싸움에 온 나라를 피로 물들였다. 청일전쟁으로 조선의 정세는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워졌다. 명성왕후는 러시아에 도움을 청했고 러시아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에게 경고하고 묶어 두려 했다. 그러자 1895년 10월 일본은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령으로 명성왕후를 경복궁에서 살해한다. 한 나라의 왕비조차 지켜줄 사람 하나 없었던 조선은 처절하게 망해갔다 .

조선의 멸망 원인은 역사학자들이 여러 이유를 대지만 백성을 사람대접하지 않는 왕과 양반네들 탓이다. 조선 왕조 내내 오직 군주만을 위한 정치 즉 양반들의 기득권을 누렸기에 국가와 백성들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시대가 대책 없이 망해 가는데 양반들은 배운다는 핑계로 일본으로 유학 후 일본의 앞잡이에 섰고, 해방 후에도 미군정 휘하로 들어가 잘 먹고 살아왔다. 해방 후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 오류들이 아직도 구석구석 잔재하고 있다. 특히 친일파 후손들이 특세하지 못하도록 역사를 청산했더라면 인간을 존중하는 문화가 홀씨처럼 널리 퍼져 나갔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했다. 그러나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지금은 계속 뽑아주는 우리 국민이 문제가 더 크다 할 것이다. 지난역사 관용이 사라진 불행한 우리 백성들 지금도 어디 아물지 않는 상처가 가슴깊이 숨어있는 것 아시고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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