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8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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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어울리는 동물원
최종욱
우치동물원 진료팀장

  • 입력날짜 : 2018. 02.13. 18:45
설과 추석 같은 우리 고유의 대명절과 동물원을 연관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 명절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근무해 온 우리 동물원 맨들은 이 둘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몸으로 마음으로 잘 안다. 명절에 우선 관객이 어느 때보다 많이 는다. 그런데 그 관객들은 평소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평상이 못 보던 한복을 입으셨거나 가족 단위가 주를 이룬다. 물론 평상시에도 동물원은 가족 단위로 많이 오시지만 그 때는 주로 부모와 어린 자녀들 위주다. 명절 때는 아이들과 더불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서로 손에 손잡고 이끌어주는 아주 다정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주로 손주들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부모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뒷전에서 천천히 따라 온다.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면 나 또한 만면에 흐뭇함을 감추기 힘들다.

요즘 핵가족이니 뭐니 하는 말은 명절 때 동물원에서 만큼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동물원은 봄가을에는 소풍 오는 학생들이 차지하고 평일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들이 나온 주변의 부부들이나 연인들이 차지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그들을 따라다니기 지친 부모님들이 주로 차지한다. 하지만 명절 때는 이처럼 3대가 어우러진 전혀 다른 구성원들이어서 명절을 처음 대하는 직원들은 꽤 놀랍고 신선해 한다. 이번처럼 한파가 몰아치거나 눈비가 내려도 조금만 날씨가 풀리면 어디선가 쏟아난 듯이 사람들이 동물사 여기저기에 웅성웅성 몰려있어 마치 비온 후 꽃이 일제히 피어나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동물원은 남녀노소에게 늘 편하고 신비롭고 부담 없이 다가서게 하는 선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특히 몇 년 전 우리 동물원은 무료화 되어 입장할 때의 작은 번거로움마저 모두 덜어냈다. 옆의 놀이공원도 좋지만 사실 어른들은 이런 조용한 동물원을 더 선호하는데 평상시엔 주로 아이들 위주로 지내다가 명절 때 만큼은 어른들을 아이들이 어느 정도 따라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평상이 좀 지겨웠던 동물원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서 기꺼이 따라나선다. 그리고 아이들이 먼저 앞서서 안내하려 한다. 비록 알아도 부모님과 그 부모님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안내에 맞장구를 치며 매우 흐뭇해하신다. “아이구! 애들 잘 키워놨더니 이런 대접도 받네! 애들이 박사여 박사!” 동물원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혹시 가족 간의 갈등이나 체증도 다 내려놓게 된다. 얼룩말, 기린, 하마를 차례로 돌면서 동물들에 빠져 다른 생각을 모두 휘발해버린다. 늘 동물원에 대해 이런 심리적 안정을 주는 효과가 있음을 내심으로 알고 있었지만 명절은 이 효과를 증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가족들을 지켜보노라면 나 역시 집안에 두고 온 부모님들이 은근히 마음속에 떠오른다. “여기 근무하면서 우리 부모님들을 내가 제대로 한번이라도 안내해 드렸나?”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 춥다. 이번 명절도 한파가 좀 걱정된다. 하지만 날만 풀리면 예외 없이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동물사마다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꼭 한분 정도는 선생님이 계신다. 굳이 해설사가 없더라도 요즘은 누구나 동물프로를 즐겨 보시기 때문에 조금만 알아도 그 날 그분은 그 동물사에 깜짝 스타가 된다. 가끔은 우리가 듣기에도 모르는 지식들이 그 분들의 입을 통해 나온다. “알락꼬리원숭이는 냄새선이 있어 서로 냄새 시합을 해서 더 고약한 놈이 이겨요. 다람쥐원숭이는 손등에 오줌을 묻혀 더위를 식혀요. 그래서 손 등이 유난히 노래요. 얼룩말은 검정 바탕에 흰줄을 가지고 있어요. 피부가 까맣거든요.” 오! 평소 동물을 좀 안다고 하면서도 이런 고마운 관람객들에게 얻어들은 깨알 같은 지식들은 동물원을 강화시킨다.

명절은 명절이다! 요즘은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어른들끼리만 놀거나 TV만 시청하는 가족들은 거의 없다. 무언가 가족이 함께 할 꺼리를 찾고 어딘가로 여행 떠나기를 좋아 한다. 하지만 명절은 대개 너무 짧다, 그래서 혹시 명절에 어딜 갈까? 고민중이시다면 몇십년 검증된 3대가 어울린 동물원 구경 오시기를 적극 추천 드린다. 이색적인 볼거리는 물론 동물들을 통해 가족 간의 화합의 장이 열리고 부담 없이 두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야생동물들은 그 존재 자체로 우리를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해 준다. 특히 명절증후군 치유효과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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