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6일(목요일)
홈 >> 오피니언 > 시론

최저임금, ‘타인의 고통’인가?
최형천
전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 입력날짜 : 2018. 03.11. 18:43
2015년 9월2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한 장의 사진이 보도됐습니다. 그리스를 바라보는 터키 해안가에 머리가 모래에 파묻힌 채 숨진 시리아 출신 에일란 쿠르디라는 세 살난 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에일란은 전쟁을 피해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배가 전복돼 엄마, 형과 함께 익사했던 것입니다. 에일란이 숨졌을 때 전 세계가 분노했으며, 난민을 돕겠다고 앞 다퉈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연민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이내 세계인들의 관심은 식어버렸고 에일란도 잊혀 졌으며, 난민의 상황은 더욱 나빠져만 갔습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양의 고통스런 이미지를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처음 목격했을 때에는 커다란 충격으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이웃의 불행이나 비극도 그 빈도가 더해지면, 이내 반응능력까지 상실하고 맙니다. 결국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무감각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손쉽게도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져 버릴까요?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전 손택’은 그의 명저 ‘타인의 고통’에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직면하여 단지 연민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위안을 삼거나, 그런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지 않은 자신의 처지에 안도하고 말기 때문에 세상이 더욱 험악해진다고 지적합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전년에 비해 16.4% 인상되어 7,530원으로 시행되면서 아직 논란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의 가계소득이 늘면 소비가 증가하여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임금인상을 통한 분배구조 개선으로 양극화를 완화시켜 사회통합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지속적인 최저임금 인상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시민들은 최저임금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인 인권보호와 생존에 관한 문제인 만큼 필요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반대론자들은 기업의 고용회피, 상품가격의 인상, 경기위축 등의 우려를 들어 최저임금 시행의 연기 내지는 인상폭의 완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논거를 보면 사실과 다를 뿐더러 더욱 큰 문제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경제란 사람이 살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부양할 최소한의 생계비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그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통계에 의하면 2016년 최저임금 이하를 버는 노동자는 342만 명이며, 또한 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수준을 버는 노동자 중 78%가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구주이거나 그 배우자 즉 핵심소득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최저임금이 가구의 생계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최저임금 인상이 저소득 가구의 소득을 늘릴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위 기득권층은 이대로 만을 지속적으로 외쳐댈지 모릅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 사회의 아픔을 외면하는 나라를 결코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민들이 연대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규약을 하나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선 타인의 고통(최소한의 생계비 이하의 임금)이 나와 관계가 있음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오히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혜택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골목 시장까지 쳐들어와 싼 값으로 유혹하는 거대한 자본의 힘을 목격하면서 가지게 된 두려움이나 무력감을 극복하고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강자의 탐욕과 그럴듯한 시장논리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고 고통을 외면하는 몸짓을 멈추고, 약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 과제입니다. 그것이 촛불민심이 뜨겁게 바라던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입니다.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