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6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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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어둠속에서 탄생한다
이경숙
시인

  • 입력날짜 : 2018. 03.13. 19:00
어둠 속 고뇌로 지상의 무한 성장을 꿈꾸는 대나무.

그의 삶 본질은 무엇인가.

매화, 난초, 국화 등 사군자에 속한다.

대나무는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한다는 점에서 군자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덕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군자에 포함된 대나무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니고 그 중간 지대에 위치하면서 사람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참으로 많은 철학적 나무 가운데 하나다. 나무와 풀의 가장 큰 차이는 나이테의 존재 여부다.

대나무는 죽순일 때의 굵기를 그대로 가지고 위로만 자란다.

대나무가 위로 자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마디에 있다. 대나무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대나무를 쪼개듯 거침없이 진군하는 ‘파죽지세(破竹之勢)’이지 않는가. 비 온 뒤 대나무 자라듯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생겨남을 비유적으로 이로는 ‘우후죽순(雨後竹筍)’도 대나무에서 유래된 사자성어다.

선가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되는 도구도 대나무로 만든 ‘죽비’다. 대나무의 특징은 바로 ‘절(節)’이다. 대나무는 줄기에만 마디가 있는 게 아니고 가지와 뿌리에도 마디가 있다.

다른 나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대나무만의 또 다른 특징은 씨앗으로 번식하는 대부분의 나무와는 다르게 뿌리로 번식한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나무는 일생에 한 번 꽃을 피우고 그 꽃을 피우고 나면 죽는다. 보통은 60년에서 120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데, 이는 더 이상 뿌리로 번식할 수 없을 때 보여주는 마지막 발악이다.

종족 보존이 더 이상 뿌리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면 꽃을 피우면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대나무가 대쪽 같은 선비처럼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 특성에 있다. 대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그 어떤 나무보다 곧게 자라면서 잎은 언제나 푸르다. 그래서 대나무를 생각하면 곧고 푸른 선비 상이 떠오른다. 대나무는 풀처럼, 태어난 모습대로 평생 살아간다. 이런 대나무의 삶이야말로 시인 매천 황현(黃炫)과 선비들의 마음을 빼앗은 매력이 있다.

중국에는 아주 특이한 대나무가 있다. 처음 씨앗을 뿌리고 나서 다섯 해가 지나야 비로소 싹을 틔우고 일 년 봄철 며칠 만에 무려 12m 자라는 대나무가 있다. 5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땅속 깊은 곳에서 숨죽이고 있다.

대나무의 죽순이 세상을 빛을 보기 위해 5년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준비해왔듯이 찬란한 기회가 오기 전까지는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엄마 뱃속의 어둠 속에서 아홉 달을 보낸다.

모든 식물의 씨앗을 싹의 틔우기 전에 어두운 땅 속에서 일정한 기간을 보낸다. 어둠이야말로 생명체들이 더 밝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될 필수 과정인 것이다.

중국 대나무 우화는 또한 임계질량(臨界質量)의 개념까지도 담고 있다.(임계질량이란 핵분열 연쇄반응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인 최소질량을 말한다).

물도 정확히 100℃가 되어야 끓는다. 99℃가 되기까지 물은 자신의 용솟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99%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어느 순간 1%의 영감이 떠오른다.

대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바랄수록 비밀 속에서 천천히 준비한다. 땅속에서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응시할 수 있는 예민한 눈을 가졌다.

그 변화가 누적되어 반복되는 가운데 상상할 수 없는 폭발적인 임계질량이 확보된다. 그 임계질량은 세상을 향한 용솟음의 에너지다. 이때 대나무는 땅속 어둠에서 탈출 시기가 돌아온다. 임계질량이 에너지로 폭발하는 순간이다.

임계점은 물이 끓기 직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다가 갑자기 비약적인 양자도약 (量子跳躍: 전자가 원자 내부에서 불연속적으로 궤도를 도약하는 현상) 이 일어나는 시점이다.

이 양자도약은 ‘연잎 현상’에 비견될 수 있다. 연못을 반쯤 덮었던 연잎이 그 연못 전체를 다 덮는 날은 바로 그 다음 날이라는 비유이다. 주전자의 물이 99℃가 되어도 끓지 않다가 마지막 1℃에서 갑자기 끓는 것과 같다.

이런 차원에서 신영복 교수가 2006년도 서울대 입학식에서 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 인상적이다.

“땅속의 시절을 끝내고 나무를 시작하는 죽순의 가장 큰 특징은 마디가 무척 짧다는 사실입니다. 이 짧은 마디에서 나오는 강고함이 곧 대나무의 곧고 큰 키를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훗날 온몸을 휘어 강풍을 막는 청천 높은 장대 숲이 될지언정 대나무는 마디마디 옹이 진 죽순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내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입니다. 그것은 삶의 교훈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과학입니다. 여러분은 장대 숲으로 자라기 위해서 짧고 많은 마디를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직면하게 될 숱한 어려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먼저 마디마디 옹이 진 죽순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99%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이따금씩 떠오르는 영감은 그 뿌리가 견실하지 못해 스쳐 지나가는 한 생각에 불과하다. 대나무 뿌리의 견실함이 어떤 세파에도 굴하지 않고 올곧은 삶을 향해 도약하듯이 튼실한 영감의 뿌리는 99%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세상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비춰주기 위해서는 창조의 비밀을 조용히 준비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변화는 사소함의 진지한 반복 속에서 어느 순간 비로소 탄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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