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목요일)
홈 >> 기획 > 문병채 박사의 신해양실크로드

[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전라도 문화와 연결된 ‘영파’ (2)
백제불교 도래지 중국 영파 ‘천동사’

  • 입력날짜 : 2019. 01.15. 18:42
중국 영파 태백산 기슭에 자리한 ‘천동사’ 대웅전 모습.
중국 절강시 영파의 ‘영파박물관’에는 영파의 7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당송 때 이미 해상실크로드의 주요 항이었다. 현재도 중국 2위, 세계 4위의 항구인 것은 다 우연이 아니다. 이 박물관에는 고대 한반도와의 해양교류 내용이 많이 있다. 영파가 그만큼 한반도와 해양교류가 활발했다는 증거다.

영파시 동쪽으로 25㎞ 떨어진 ‘태백산’ 기슭에 오래된 사찰 ‘천동사’가 있다. 1천600년 전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거처했다고 알려지고 있는 절이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 마라난타가 거처했던 ‘천동사’

영파는 백제와 해양교류가 특히 활발했던 곳이었다. 당시 백제는 동진과 8회, 송과 18회의 교류를 할 정도였다. 또한 고려 왕자 목연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스님들도 많이 다녀간 곳이다. 천동사는 일본 ‘조동종’의 조정이기도 하다. 남송 때 일본 도원스님이 이곳에 와 공부한 후 일본 귀국 후 ‘조동종’을 창시했다. 지금 일본의 조동종은 절이 1만5천개소가 있고 신도가 800만에 이른다. 1980년에 천동사 경내에 세운 일본 도원스님 기념비가 아직도 남아있다. 또한 일본에서 신격화 수준으로 추앙받는 승녀화가인 설주(1420-1506)가 중국화법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그에게 ‘천동 제일 귀빈’이란 영예를 주고 있다.

영파에 있는 천동사(天童寺)는 서진 시대(서기 300년)에 세워 졌다고 한다. 1천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역사다. 이 사찰은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거처했던 절’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2006년 4월21일, 1천600여 년 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로 불교를 전하는 과정이 재현되기도 했다. 영광 법성포 백제불교 도래지 관광명소화 사업 준공을 계기로 열린 법회였다.

천동사는 영파시 동쪽으로 25㎞ 떨어진 ‘태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었다. 태백산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곳에 있었다니!

주차장에서 차에 내렸다. 사찰 입구가 멋지다. 산새가 절을 품어주는 듯하다. 독특한 구조의 정문 뒤로 조경이 잘 꾸며진 뜰(정원)이 쭉 조성돼 있고, 멀리 높은 ‘철불탑’이 산중턱에 솟아 있다. 절은 주차장에서 2㎞ 가량 가야 했다. 먼 거리여서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다. 타고 온 택시를 대기시켜 놓은 상황이라 시간이 많지 않아 전동차를 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벚꽃나무도 많고 공원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대나무 숲이 울창하다. 경관이 좋아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다.

절 입구에 방생 연못이 있다. 연못에 커다란 고목들의 가지들을 연못에 드리우고 있다. 때 마침 10월이라 가을단풍이 호수에 비치고 있다. 주변 대나무와 솔밭의 푸르름이 더해지고 있다. 그 위에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이 호수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철불탑까지 올라가는 산책길이 그림 같다. 둘러쳐진 산세와 울창한 수목과 송죽(松竹)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참 아름답다.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이 실감난다.
‘천동사’ 입구 아름다운 경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필자.

산책하듯 들어가니 사찰 정문이 나온다. 절 내가 이끼로 덮인 고목나무로 가득 차 있다. 고목이 숲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오랜 역사를 풍긴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거리지 않아서 좋다. 입구에 진(晉)나라 시대 사찰이란 글이 쓰여 있다. 1천250년 된 당백(唐柏) 나무가 입구에 우람차게 서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천왕전이 웅대하다. 그 뒤로 장서루 등 많은 고건물들이 보인다. 1천7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찰이다. 옛 모습이 잘 보존된 몇 안 되는 고찰이라고 한다. 한때 999개의 승방이 있었으나, 지금은 730개라고 한다. 지금도 웅장했다. 일반인이 참배할 수 없는 곳이 많아 아쉬웠다.

법당 내부는 남송 시대 그림이 그대로 걸려있다. 스님들의 저녁 예불이 한창 이어지고 있다. 스님들의 예불 소리가 웅장하고 장엄했다. 신자가 아닌 필자도 두 손을 모으고 삼배의 묵례를 했다.

주요 건물은 천왕전, 대웅보전, 법당, 선결당, 라한당, 종루와 위서루 등이 있고 모두 긴 복도로 연결돼 있다. 복도로 어느 곳에나 갈수 있고, 따가운 해볕을 막고,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다. 공양 간에는 1천명이 먹을 수 있는 ‘천승과’(千僧鍋)라는 무쇠 솥이 걸려있어 당시를 설명했다. 직경이 236㎝인 엄청난 크기다. 선방 출입구에는 염불시수(念佛是誰), 즉 ‘염불하는 자, 너는 누구냐?’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 마라난타 고향과 일생

마라난타가 오기 2개월 전에 백제에서는 동진에 사신을 보냈다. 당시 백제는 동진에 조공하고 있는 시기였다. 384년 백제 사신이 왕명을 받들어 이곳 천동사에서 마라난타를 모시고 왔던 것이다.

이보다 12년 앞서 고구려도 ‘순도’가 전진의 사신에 수반해 왔던 것과 같은 경우다. 백제가 동진과 친선관계를 맺은 가운데 불교전래가 이뤄졌던 것이다. 당시, 침류왕은 마라난타를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라난타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었다. 마라난타의 입국은 국가 틀을 다져가던 당시 백제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고대에 사상(종교)는 국민을 통합시키고, 중앙집권국가로 도약하게 만들 수 있었다.

마라난타가 처음 도착한 전남 법성포(法聖浦)는 ‘성인이 오신 포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이 백제불교도래지가 됐고, ‘성역화’ 사업이 행해졌다. 영광 불갑사, 군산 불지사, 나주 불회사도 마라난타가 와서 지은 절이라 한다. ‘아미타 신앙’과 ‘정토 신앙’이 이때 받아들여졌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믿고 따름으로써 그의 나라인 ‘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신앙이다. 아미타불은 ‘무량수불’(산스크리트로 ‘무한한 수명’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린다. 티베트 불교에서 무량수불은 여러 가지 장식에 왕관을 쓰고 영원한 생명의 보석들이 나온다는 신비스러운 항아리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다.
‘천동사’ 경내 거리 모습.

마라난타는 ‘간다라 지방’인 지금의 파키스탄 ‘쵸타 라흐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30세에 육상실크로드를 따라 14년간 ‘탁실라→폐샤바르→우전국→돈황→장안→동진’ 등에서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민희식 교수에 의하면, 실제로 쵸타 라오르의 ‘갈리 마을’에서는 마라난타라는 고승이 아주 옛날에 살았으며 그가 한국으로 갔다고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고 있음도 확인됐다. 마라난타는 동진에 12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당시 동진은 건강(建康·지금의 남경)에 도읍을 정하고, 날로 강성해지는 북위의 심한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때 그는 전술 참모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백제에 불교가 최초로 전해진 것은 제15대 침류왕 원년(384) 9월이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뒤 12년 만이었다. 법성포(法聖浦)는 당시 마라난타가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다. 또한, 법성포는 백제시대에는 아무포(阿無浦)로 불렸는데…. 아무는 나무아미타불의 음을 함축해 놓은 것이라 한다.

현재 법성포에는 불교테마공원이 조성돼 있다. 마라난타의 고향인 간다라 유물관이 있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간다라 양식의 불상과 불탑’이 서 있다. 높은 정자(부용루)에 오르면 조성된 성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멀리 서해가 까마득히 보인다. 부처님 가르침의 씨앗을 뿌린 곳이기에 불자라면 한번쯤 참배해야할 성지다.

불갑사는 1천600여년 전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창건한 최초의 절이다. 불갑사에는 마라난타의 손길이 닿았다는 증거가 남아 있다.

첫째, 대웅전 지붕 위의 ‘용마루 보주’이다. 다른 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일종의 사리탑이다. 남방불교 특징이다. 둘째, 대웅전 내부 서쪽 끝에 불상을 봉안했다. 마치 부처님이 서역에서 동방을 바라보는 모양이다. 셋째, 상사화도 연관돼 있다고들 한다. 상사화를 가지고 와 절 주변에 많이 심었던 것은 탱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탱화를 그릴 때 상사화 꽃을 말려 물감을 만들고, 뿌리는 즙을 내어 칠을 하면, 좀이 슬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