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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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그들의 또 다른 미투(Me too)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1.16. 19:17
정초만 되면 여지없이 불어 닥치는 미투(Me too)바람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해 정초에 불었던 정치권의 미투(Me too)바람이 올 정초에는 체육계에 불어 닥쳤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에 이어 전 유도선수 신유용씨가 성폭행 피해를 털어놓으면서 체육계의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태권도·레슬링·택견 등 다른 종목에서도 성폭행·성추행 의혹이 터졌다. 잇따라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 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엄정 조사를 촉구했다.

엘리트 체육 선수들은 도제식 교육을 받고 장기간 합숙 훈련을 한다. 감독과 코치의 권한이 절대적인 가운데,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폭력과 성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체육계의 폐쇄성은 피해 고백을 어렵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 되면서 오랫동안 피해를 키워왔던 셈이다. 신유용씨도 “피해 사실을 알리면 유도 인생이 끝날까봐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이번 기회에 이런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엘리트 중심 한국체육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지 않으면 피해자는 계속 양산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국가홍보 차원에서 엘리트 체육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엘리트 체육의 폐쇄성을 언급했지만 개선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섬 문화’라 할 정도로 운동부 자체가 폐쇄적인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오죽했으면 일부 선수가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내부 폭로’를 통해 자신의 인권을 주장했겠는가. 이전에 비슷한 문제가 터질 때마다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고, 관계기관이 근본대책을 내놓았다면, 심석희 선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체육인재 양성 방식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학교와 지방자치단체, 나아가 국가의 요구 속에 성적내기에 급급했다. ‘때려서라도 성적을 내야 한다’는 인식 속에 폭력이 일상화되었고 묵인되었다. 미숙한 상태에서부터 폭력과 주종관계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성인이 되더라도 선뜻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환경 속에서 선수들은 지도자 등이 아무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 성폭력 등 피해자를 위한 신고센터가 마련돼 있지만 선수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어서 그 신고건수가 극히 저조하다. 대한체육회가 최근 발표한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표팀 내 성폭력 문제를 담당하는 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의 존재를 아는 지도자는 26.7%에 그쳤고 선수와 학부모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더 낮았다. 이 조사에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했다는 국가대표 응답자 31명 가운데 신고기관에 이를 먼저 알렸다는 선수는 1명에 그쳤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주의원의 지난해 대한체육회 국감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체육단체가 비리나 폭력 등을 이유로 내린 860건의 징계 중 복직이나 재취업한 사례가 24건, 징계 후 복직이나 재취업한 사례도 299건에 달했다. 폭력을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현장으로 돌아오는 가해자를 보면서 피해자도 더욱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게 된다.

올해 정부의 체육 예산은 1조4천647억원이다. 이 중 전문체육 예산은 3천490억원이고, 생활체육 예산은 8천44억원이다. 전문체육 예산은 전년도보다 6.5%, 생활체육은 56.7% 늘어 생활체육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여전히 해마다 수천억원의 예산이 엘리트 체육에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중 체육인의 인권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미미하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국회의원은 1월11일,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체육계미투법)을 대표발의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국가와 지자체가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선수 및 체육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책 마련을 마련하고 ▲체육지도자 자격검정 기관 및 연수기관에서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며 ▲성희롱·성폭력 피해자 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처분의 금지를 규정하며 ▲불이익 처분을 하거나 성폭력 사건을 은폐·축소 방임한 기관 또는 단체에 대해 보조금 등의 재정적 지원 제한하고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 정례화 등을 주요내용으로 담고 있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지도자와 선수간의 위계구조상 취약한 위치에 있는 선수들을 지도자라는 지위와 위력을 사용하여 발생되며, 성폭력 피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불이익 때문에 신고가 어렵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였다. 체육계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및 지원, 성폭력 방지를 위한 교육 등 법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법의 제정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번 미투로 드러난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은 사실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다. 성폭행 파문이 확산하자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지난 15일 공개 사과하고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매우 미흡해 보인다. 국제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따서 국위를 선양하는 이들이 이런 끔찍한 인권사각지대에 갇혀있어서는 안된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는 사전적이고 예방적인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미투 폭로 이후에 피해자를 성폭력으로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엄중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스포츠 강국이라는 명예 뒤에 폭력과 억압이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금메달을 위해 젊은 선수의 인권과 미래까지 희생시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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