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홈 >> 기획 > 문병채 박사의 신해양실크로드

[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전라도 문화와 연결된 절강성 ‘영파’ (3)
고대 한중 해상무역 최대 거점…해양실크로드 출발지

  • 입력날짜 : 2019. 01.29. 18:09
옛 뱃길(운하)과 고대건물이 잘 어우러진 중국 절강성 영파의 시가지 모습.
실크로드가 근래 들어 조명을 받고 있다. 2013년 시진핑의 일대일로 전략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중국 절강성 영파는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해상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자 우리나라 특히 남부 호남문화에 큰 영향을 준 포구 중 하나다.

한반도인들이 남긴 흔적과 향기에 취해 볼 수 있는 여행지다. 필자가 시간 날 때면 이곳을 수시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 중국풍이 물씬 풍기는 옛 시가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슬비에 가까운 비이기에 그냥 시내 탐방에 나섰다. 도시가 무척 부유해 보인다. 절강성의 최대 항구다. 영파(닝보)는 당나라 때 ‘명주’로 불렀던 곳이다. 고대 해양실크로드의 출발점이었다. 일본·한국·아라비아·동남아와의 무역으로 번성했다. 우리나라와는 특히 많은 교역을 했다. 한때 일종의 영사관인 고려사관(高麗使館)이 설치되기도 했다.

옛 시가지는 보행자 전용거리로 지정돼 있다. 보행자가 많아 왁자지껄했다. 정신없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천천히 걸었다.

오래된 전통상가 거리다. 중국풍이 물씬 풍긴다. ‘고루(망루)’를 위시한 많은 고건물들이 상점가를 이루고 있다. 건물들이 고풍스럽다. 서울 인사동 같은 거리다. 이곳저곳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이 흐르는 작은 공원도 있어 아픈 다리를 쉬어가기에 딱 좋다. 한참 걸어가니 우리나라 김대건 신부가 잠시 머물렀다고도 알려진 천주당(天主堂)이 보인다. 눈에 확 들어오는 건물이다.

좀 더 가니 당나라 때(696년) 세워졌다는 ‘천봉탑’이 우뚝 서 있다. 높이가 51m나 된다고 했다. 팔각칠층탑이다. 관광객이 올라 갈 수 있다. 탑에 올르니 영파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방금 지나온 고풍스러운 거리가 내려다 보인다. 고대 해상실크로드 항이었을 포구도 보인다. 현대식으로 잘 정비된 항만이 번잡하다. 많은 물동량을 보니 풍요롭게 느껴진다. 심청 설화가 깃들여 있는 주산군도도 눈에 들어온다.

▶ 중국 최초의 서양 조차지 ‘노외탄’

영파(닝보)는 ‘닝보방’(寧波幇)의 본거지다. 닝보방은 우리나라 ‘개성상인’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상인집단’이다. 닝보방이 말해 주듯이, 영파는 고대부터 유명한 해상무역항이었다. 해상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노외탄(老外灘)! 상해 ‘외탄’의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만, 중국 최초의 ‘외탄’ 즉 ‘외국인 거주지’였다. 이곳을 통해서 상업이 번성한 국제도시가 됐다.
중국풍이 물씬 풍기는 영파의 옛 시가지.

상해의 외탄보다 더 오래됐다고 해서 초기 외국인 거주지 모습을 보기 위해 갔다. 유럽 어느 도시에 온 느낌이다. 아직도 유럽풍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골목을 거닌 것이 재미있었다. 실망스럽지 않았다. 눈이 심심하지 않다. 웨딩 촬영 신부들이 많이 보인다. 서양식 예쁜 건물들이 참 많다. 영파 여행에서 꼭 들러볼만한 곳이었다.

▶ 절강성에 남겨진 우리의 흔적과 향기

이곳 중국 절강성은 우리나라 특히, 남부 호남지역 문화와 산업 등 여러 방면에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이곳과 한반도와의 교류는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에 이미 벼농사가 이곳으로부터 전해졌다. 벼농사의 기원은 남인도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약 1만년-6천500년 전에 시작돼, 다른 나라로 전파됐는데 우리나라에는 남인도에서 동남아를 거쳐 이곳 저장성으로 전해진 것이 삼한 시대에 한반도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에 이미 이곳 왕조인 ‘남조’의 문화가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무령왕릉이 중국 남조의 것을 따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백제와 동진과의 교류는 웅진 천도 시기까지 모두 29회 걸쳐 사신을 파견하거나 받아들였다. 이곳에서 수련 중인 ‘마라난타’로부터 불교가 전해지기도 했다. 그 후 수많은 백제 승녀가 이곳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교류가 더욱 활발했다. 816년 신라에 큰 기근이 발생하자 이곳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간 신라인이 170명이나 됐다고 한다.

또한 한반도 표류인들이 도착한 곳이기도 하다. 신라시대에 최예희 표류를 시작으로 18세기 최부의 표류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표류해 이곳에 도착했다.
최고 등급의 국가관광지로 지정 받았다고 홍보하는 시정부의 홍보물 사진.

또한 수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중국에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장보고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무대였으며, 지금도 당시의 유적(신라방)이 아직도 남아 있다. 또한 신라의 대문장가인 최치원이 12세에 이곳으로 건너와 당나라 과거에 합격해 중국 관료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교류가 더욱 확대됐다. 월호(月湖)에 고려 사신이 묵었던 고려사관(高麗使館)이 설치돼 있었고, 1117년부터 1164년까지 고려사신 57차례, 송사신 30여 차례 왕래했다. 왕래 인원은 1차례 당 200여명 정도였다고 한다. 고려 왕족 출신(문종의 넷째 아들)으로 이곳에 와서 불법을 탐구한 보운대사 의통(1055-1101)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이들의 해상을 통한 왕래는 보물선에 대한 이야기와 설화와 신화의 재미난 이야기를 낳기도 했다. 보물선의 대표적인 사례가 1976년 발견된 ‘신안무역선’이다. 이 선박은 이곳 영파와 한국, 그리고 일본을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안무역선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보관해 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목포해양박물관’이다.

설화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대표저인 것이 뱃사람을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관음불상에 대한 이야기고, 보타도에 깃든 심청설화가 대표적이다.

또한 동식물은 물론 농작물까지도 이곳에서 한반도로 전해진 것이 수없이 많다. 벼, 차, 감귤이 대표적이다. 차의 원산지는 중국 운남성, 즉 인도와의 국경지대로 알려져 있는데 저장성 다녀 온 신라인들(사신이나 승녀)에 의해 역시 바다를 통해 전해졌다.

감귤은 원래 자생종이 있었으나, 질 좋은 품종이 저장성 온주에서 전해진 뒤로는 지배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1911년 프랑스 출신 신부가 제주산 벚나무를 일본에 있는 신부에게 보내고, 그 대가로 온주밀감 15주를 받아 와 심은 것이 온주 감귤의 효시다. 껍질이 얕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손으로 껍질을 벗기기가 쉬운 품종이다.

▶ 관광자원으로 넘쳐나는 절강성

금년 휴가는 이곳 절강성 영파로 다녀 올 계획을 세워볼만 하다.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준 여행이 될 곳으로 추천한다.

다녀 온 김에 잘 꾸며 놓은 공원을 보듯 아름다운 ‘강심서’(江心嶼), 무협지에 나옴직한 기암괴석으로 멋진 ‘안탕산’, 산기슭 천 길 낭떠러지 위에 길 ‘신선거’(神仙居), 소담하게 아름다운 풍류의 강 ‘남계천’, 장개석 고향인 ‘계구진’, 중국 최초의 문화유적 ‘보국사’, 세계적인 가족도서관 ‘천일각’ 등도 함께 보고 오기를 추천한다.

또한 인근에는 볼 수 있는 것들이 산적돼 있다.

아름다운 수향마을인 월하고진(月河古鎭), 아름답기로 소문난 설두산, 2천500년 역사의 향기를 지닌 ‘소흥(紹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가 숨어 있는 월왕전,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 ‘루쉰[魯迅]’의 고향, 왕희지 족적이 남아 있는 ‘난정’, 우(禹)의 능묘(陵墓)인 ‘대우릉’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관광지가 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관광지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