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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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앞에 생각하는 노년의 삶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1.30. 19:31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오래전 개봉된 영화 ‘은교’에서 백발의 시인 이적요의 대사다. 필자도 요사이 ‘나이듦’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은퇴할 나이가 다가오고, 노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필자의 친구들도 60대 이후의 삶을 어떻게살까 고민한다. 인간은 태어나면 꼭 늙게 되어있으니, ‘노인의 삶’은 인류 공동의 큰 과제다. 필자도 요즘 부쩍 ‘품격있게 나이들기’를 고민한다.

내일 모레면 설 연휴가 시작된다. 설 풍경 중에서 가장 서글픈 것은, 홀로 산 시골어머니가 설 쇠러 온 자식들 배웅하는 장면이다. 바리바리 차에 농산물을 실어주고 손자와 자식들 차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동구 밖에 서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다. 빈자리가 얼마나 클까. 다시 시작되는 외로움을 어떻게 견디실까. 괜히 안쓰럽고 눈물이 고인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 노년의 삶은 누구나 외롭다. 늙어 가면서 신나는 인생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하다. 거동조차 불편해지면 요양원이나 단칸방 신세가 된다. 연금이나 정부 보조금으로는 생계조차 힘든 이들도 많다.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을 수도 없는 독거노인도 많다.

일찌감치 시인 예이츠가 ‘비잔티움으로의 항해’의 첫 구절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40·50대 은퇴 가구가 2027년에는 236만, 2037년에는 727만 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올해 정년을 맞는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80만명을 넘어서고 앞으로 15년 동안 2034년까지 연평균 88만명이 은퇴한다는 통계도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 출생 인구)의 은퇴가 본격화된 2015년부터 이미 예고된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다. 은퇴인구의 급증에 따라 우리 경제에 닥칠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40-50대 10명 중 6명은 은퇴 이후에도 자녀부양 부담을 지게 된다. 이는 사상최악의 청년실업난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역대최고 수준으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 더 늦은 나이까지 소득활동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어린 자녀가 있는 가장이라면 이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같은 미래의 지출을 보전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수령액은 중위소득 기준 30년을 꼬박 부어도 실 수령액은 100만 원 안팎이다. 결국 이들은 최대 50년을 일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40-50대가 앞으로 20년 안에 은퇴할 것이란 전망, 국민연금 말고는 마땅한 노후대비 수단이 없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크나 큰 비극이다. 이들의 자산구조를 보더라도 마땅한 소득원이 없는 한 자녀의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보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팔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보통 큰 일이 아니다.

대안으로 현재 65세인 노인의 기준연령을 70세로 높이는 방안에 국민 56%가 찬성했다. 노인연령 상향은 평균 수명 증가에 따른 노인 기준의 물리적 변화가 촉발한 이슈지만 노인 복지비용과 직접 맞물려 있다. 찬성하는 측은 고령화로 노인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부양 부담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측은 기준연령 상향에 따른 복지 축소와 노인 빈곤 문제를 걱정한다. 여론조사에서 이례적인 결과는 60대 이상 연령층에서 노인연령 상향에 찬성하는 비율이 60%에 육박해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다 점이다. 아마도 법적으론 노인이지만 아직 일과 사회활동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노인’의 심리가 반영됐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다. 노인 기준을 상향해야 할 필요와 그렇게 하기 어려운 이유를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나 지자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대한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향후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큰 위험 요인이 된다.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노년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이다. 65세 이상 고용률이 30.6%나 된다. 특히 75세 이상 초 고령층 고용률도 무려 17.9%다. 선진국에선 이 나이 때 일하는 사람이 없다. 덴마크의 고용률은 0.0%이고 프랑스 0.5%, 벨기에 1.2%, 독일 1.8%에 불과하다. 젊어서는 일에 치이다가 죽기 전 여생을 즐길 시간도 짧은데 그나마 아프고 배고프게 보내거나 일해야 한다.

한국 노인 10명 중 9명은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고, 3개 이상의 복합질환을 앓는 노인들이 절반이다. 치매 노인인구는 10년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 질병 때문에 노인 3명 중 1명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낀다. 이러다 보니 평생의료비 중 절반을 65세 이후에 지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취직 못한 자녀가 있어 일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인가.

우리나라 노인은 너무 불행하다. 65살 이상 노인빈곤율은 49.6%,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노인 가구의 절반이 빈곤 상태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회원국 평균인 12.8%의 4배 수준이다.

이번 설에는 70세 이상 부모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라. 한국전쟁세대의 고단한 노후에 관심을 좀 가지라. 정치인들도 설 민심을 살필 때, 지역구 노인의 서글픈 삶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한국이 늙어가고 있다. 지금이 문제해결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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