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월요일)
홈 >> 오피니언 > 남성숙칼럼

광주에 오긴 왔는데, 이거 왜 이래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03.13. 19:23
지난 11일 저녁 뉴스를 보다가 울컥 불덩어리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 치밀어 올랐다. 32년 만에 광주에 온 전두환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광주지방법원 앞에 몰려있었다. 그중에는 이명자 전 오월어머니집 관장도 있었다. 오월어머니들은 ‘광주에 사과하라’며 울부짖었다. 전두환은 ‘사과하라’는 말을 못 들은 척 걸었고 ‘광주시민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호원의 제지를 받던 다른 취재진이 손을 뻗어 “발포 명령 부인하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이거 왜 이래” 한마디 하고, 법정에 들어갔다.

그가 오긴 왔다. 재판의 피의자가 재판에 나오는 것은 상식이지만, 하도 요령을 잘 부려서 이번에도 꼴을 못 볼 줄 알았다. 강제구인하겠다고 하니까, 부인을 대동하고 와서 한다는 소리, 이거 왜 이래?

전두환을 법정에 서게 만든 혐의는 ‘사자(死者)명예훼손’이다. 전씨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故조비오(조철현)신부를 회고록에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언급해 검찰에 기소됐다.

그러나 이날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전두환은 5·18 당시 계엄군 헬기사격,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이날 재판에서 쟁점은 헬기 사격 여부와 회고록을 쓸 때 내용이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는지에 집중됐다. 헬기 사격은 지난해 2월 국방부 5·18특별조사위가 “당시 육군이 광주에 40여 대나 되는 헬기를 출동시켰고, 5월21일과 27일 시민들에게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고 발표해 확인된 사실이다. 앞서 광주 전일빌딩 탄흔 감식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헬기 사격으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런 명백한 사실에도 전 전 대통령 측은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으며 있었다고 해도 조 신부가 주장하는 시점에 헬기 사격이 없었다면 공소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전씨 변호인 정주교변호사는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한다.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고 전일빌딩의 탄흔은 간접증거라고 해도 고 조비오 신부가 증언한 5월21일 오후 1시30분부터 3시 사이 기총소사의 증거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 조비오 신부 유족 측뿐 아니라 광주시민은 전두환측 궤변에 분통이 터졌다. 이런걸 두고 두 번 죽이는 거라 하는가보다. 아물지 않는 상처 위에 소금 뿌리는 것처럼 아팠다.

우리가 전두환에게 화가 나는 것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39년간 줄곧 사과 요구했지만 단 한 번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는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느냐” “보안사령관이 청와대를 꺾고 발포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며 자신은 5·18민주화운동과 무관하다는 뻔뻔함을 보였다. 심지어 회고록에서 자신이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는 뻔뻔한 주장을 폈다. 39년 동안 한을 품고 살아온 5·18유족에게 상처 주는 말만 쏟아냈다.

아무리 악한 삶을 산 사람도 죽기 전에는 변한다고 들었다. 전씨는 광주에 사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져버렸다. 누가 파렴치한가. 성스러운 삶을 산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광주의 명예를 훼손한 것과 같다. 오죽 했으면 조비오신부가 저 세상에 가서도 광주를 위해 전씨를 법정으로 끌어냈을까.

조비오 신부는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이 ‘파렴치한 저짓말쟁이’라고 비만할 분이 아니다. 조 신부는 광주신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수품 이후 꾸준히 약자를 위해 살았다. 1977년 농협이 거짓 고구마 수매 약속으로 농민들을 속인 ‘함평 고구마 사건’ 당시 1천여명의 농민들이 기도회를 열 수 있도록 도운 적도 있다. 1978년 조 신부의 도움으로 탄생한 ‘들불야학’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회보 등을 배포하며 활약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때는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의 위임으로 천주교를 대표해 수습위원회로 활동했다. 계엄군과 협상이 결렬되고 진압이 더 잔인해진 26일엔 동료들과 ‘죽음의 행진’을 조직했다. 조 신부와 시민들은 일렬로 줄지어 4㎞ 남짓을 행진했다. 계엄군과 탱크가 도열한 상황에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이후, 신군부의 보복으로 김대중전대통령 내란음모 사건에 엮여 옥고를 겪기도 했다. 초대 5·18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1989년 국회에서 열린 5·18 청문회에서는 직접 본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청문회에서 조 신부는 “헬리콥터 기총소사는 너무도 엄연한 사실”이라며 “지상에 있는 시민들이 공중에 대해 아무런 공격을 가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중에서 사격을 가하는 것은 자위권 발동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헬기 사격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특히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과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아리랑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으며 소외된 이웃과 민족화합을 위한 사회활동에도 앞장섰다. 2008년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얼마나 성스러운 삶이었는가. 신이 만약 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전두환에게 사자(死者)명예훼손죄가 아니라 신을 모독한 중죄를 물었을 것이다. 광주의 인권을 말살한 광주모독죄를 물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모욕한 죄를 물었을 것이다.

이래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늦어지면서 피의자가 피해자를 조롱하는 세상이 연출되고 있다. 5·18 40주년이 되기 전에 완전한 진상규명을 바란다. 이런 모욕 더 이상 못 견디겠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