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5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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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우리 잊으랴 ‘전국의 5·18들’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 입력날짜 : 2019. 03.31. 18:19
그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그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난다. 스물두 살의 문대현이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30분 만에 만들었다는 노래, 1984년 성균관대 노래동아리 ‘소리사랑’이 처음으로 불렀던 노래, 운동권 학생들이 입으로 일으킨 바람을 타고 86년에 이르러 대중한테 옮겨붙은 노래. 이쯤으로는 대중 잡지 못했을 거라 생각되므로, 부연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을 상징하는 민중가요라면, 5·18 연장선상에 있는 6·10민주항쟁 상징 노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386세대 가객 안치환의 대표곡은? 금세 답이 떠오를 것이다.

노래 들어갑니다, ‘광야에서’. ‘찢기는 가슴 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부둥킨 두 팔에 솟아나는/ 하얀 옷에 핏줄기 있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하리요/ 우리 어찌 주저하리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남도(南道)’의 본뜻은 경기도 이남의 땅, 곧 충청도·경상도·전라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라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남도’에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뜨겁다’는 것인가. 생각건대, ‘남도’의 중심인 광주 땅에서 두 개의 역사가 대폭발했던 것을 두고 은유적으로 ‘뜨거운 남도’라 했을 것이다.

둘 중 하나는 일제 강점기 때 터진다. 1929년 11월3일, 그러니까 저 멀리 90년 전 광주 학생들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맞서 들고 일어선, 항일운동이었다. 역사는 그걸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 이름하고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라 적는다. 광주학생은 광주학생으로 마감하지 않는다. 전국 사방 군데서 광주처럼 타오르게 한다. 서울, 개성, 인천, 원산 등 도회지뿐 아니라 읍·면 단위 학교에서도 일제에 항거했지 아니한가. 조선총독부의 기록에는 ‘194개 학교, 5만4천명 참여’라고 나와 있지만, 훗날 축소조작임이 밝혀졌다. 기록을 남길 때 불의(不義)한 것들이 잘 쓰는 기법이 있다. 자신들한테 유리한대로 ‘축소’ 또는 ‘확대’를 골라 쓰고 있다는 말이다. 총독부도 그랬던 거다. 77년 뒤인 2006년 광주광역시교육청의 정밀조사 결과 350개 학교가 참여한 것으로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다시 격랑 속으로 역사는 흘러 1980년 5월18일, 광주는 두 번째 폭발을 기록한다. 학생독립운동처럼 5·18도 광주 밖으로 나간다. 첨엔 혼자 뛰었으나 이내 전국이 광주 속으로 몰려왔다. 5·18은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 끄트머리를 밟을 때까지 대한민국 시대정신의 아이콘으로 기능했다. 그 많았던 시위 한 가운데 늘 광주가 있었고, 그때마다 많은 국민들이 광주의 아픔을 함께했다.

1980년 5월27일 새벽 광주가 무너진 뒤, 광주의 진실을 외치며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이들을 대개 ‘민주열사’라 부른다. 이들에게 ‘전국의 5·18들’이란 새 이름을 작명해 준 이가 있다. 물론, 새 이름자는 이들 ‘열사’ 말고도 광주정신으로 희생하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까지 아우른다 하겠다. 지난 2017년 5·18 기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이 박관현 등 4인의 5·18 행적을 짤막하게 얘기한 뒤 광주 시민들한테 “전국의 5·18들을 함께 기억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한 데서 새 이름은 왔다.

대통령의 주문은 이어진다. “광주가 먼저 정의로운 국민통합에 앞장서 주십시오. 광주의 아픔이 아픔으로 머무르지 않고 국민 모두의 상처와 갈등을 품어 안을 때, 광주가 내민 손은 가장 질기고 강한 희망이 될 것입니다”라면서 광주를 국민통합의 선봉으로 내세웠다.

5·18 39주년을 맞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고난의 80년대를 건너가던 중 ‘스스로 5월 영령이 된 열사들’을 기리기 위한 기억 장치를 만들고 있다. ‘전국의 5·18들’이란 전시 명칭을 붙여두고서다.

대통령은 재작년 그때 말했다. “수많은 젊음들이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라면서, 참이 거짓을 이기는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그 ‘수많은 젊음들’이 얼마쯤인지, 기록관은 그 수 또한 정확하게 세 나갈 것이다. 5·18이 광주에서 일어나 대한민국 전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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