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0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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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양’의 이미지로 구현한 안온한 일상의 무가치성
1975년 등단 원로소설가 김신운 단편집
‘이무기’ ‘귀향’ ‘토족’ 등 소설 8편 수록
‘귀향’ 김신운 지음 문학들 1만2천원

  • 입력날짜 : 2019. 04.14. 20:53
장편소설 ‘땅끝에서 며칠을’, ‘청동조서’, ‘율치연대기’, ‘대필작가’ 등으로 독자들에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해 줬던 소설가 김신운(사진) 작가가 이번에는 작가로서 살아온 세월 동안 썼던 단편소설들을 한데 묶은 소설선집 ‘귀향’을 출간했다.

‘귀향’에는 김 작가가 1975년 ‘서울신문’에 ‘이무기’가 당선된 전후에 쓴 작품들과 서른이 된 후 정착한 도시에서 얻은 인상과 기억들을 형상화한 작품, 정년퇴임 후 쓴 작품 등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등단작이자 초기 작품인 ‘이무기’는 자기 내면에 자기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살고 있으며, 그것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해 미쳐 버린 형의 이야기를 동생의 시점에서 쓴 단편소설이다. 형의 내면은 아버지가 화자에게 말해 준 각시바위와 소 속에서 살고 있는 이무기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구렁이 비슷하게 생긴 용이 못 된” 녀석들은 “상상만으로도 온갖 어두움이며 무시무시한 광기의 세계”에 살고 있다. 형은 바로 그 이해할 수 없고 어두컴컴한 세계의 속삭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화자인 동생은 결국 김형중 문학평론가의 해설처럼 “금기와 질서와 언어적 체계로 이루어진 세계로 아버지와 함께 탈출함으로써 신화와 무의식의 영역에서 벗어나” 비로소 어른이 된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소설이 아닌, 광기가 흐르는 강물 저 밑바닥에서 ‘인양’해 일상으로 회귀하는 성장소설인 셈이다.

이러한 ‘인양’의 이미지는 이번 소설선집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안개의 소리’에서는 물속에서 인양된 남자의 시체로 확인할 수 있고, ‘쟁기머리 산그늘’의 지석묘의 모습이나 ‘토족’에서 지혜의 아버지가 낚싯대로 건져 올린 두개골이 바로 그것이다. ‘베데스다로 가는 길’의 마지막 부분, 땡볕 더위 속에서 말라붙은 저수지의 밑바닥을 샅샅이 훑으며 6·25 사망자의 유골을 찾는 가족의 모습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어두컴컴한 저 세월의 강물 밑바닥을 탐구하며 작가로서 살아온 시간 동안 건진 ‘인양’의 이미지는 바로 ‘안온한 일상이 얼마나 사소하고 얄팍한 것인가’를 폭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김신운의 소설이 지닌 힘이다.

또한 암 수술을 겪은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김신운 작가의 말처럼, 표제작 ‘귀향’에는 앞서 언급한 ‘인양’을 마치고 삶의 끄트머리에 선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작품의 주인공인 노인은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기에 삶을 등지고 기억을 더듬어 고향으로 간다. 그러나 찾아간 고향은 사람들이 없어 텅 빈 마을이었고, 아는 얼굴조차 없고, 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다. 실망을 가득 안은 채 햇볕에 달아오른 바위에 기대, 그것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스스륵 잠에 빠져드는 그 순간 노인에게 찾아온 것은 ‘먼 우주공간을 지나온’ 소녀였다. 여기서 소녀는 고향의 여름 산에 기적처럼 피어나던 꽃들, 초록세상에서 볼 수 있는 한여름의 기적을 떠올리게 해 주는 존재다. 즉 노인은 고향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죽음을 맞이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성장소설이 주를 이뤘던 초창기 소설이나 역사의 비애 또는 인간성의 어둠을 탐구했던 시절과는 달리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되는 작품”이라며 “이번 소설선집은 단순히 과거의 단편소설들을 모은 것이 아닌, 김신운 작가가 소설가로 살아온 삶의 기록”이라고 평했다.

한편, 김신운 작가는 197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장편소설 ‘땅끝에서 며칠을’, ‘청동조서’, ‘율치연대기’, ‘대필작가’ 등을 발표하고, 제6회 광주문학상(1984) 제4회 한국소설작가상(2014)을 수상했다./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         정겨울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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