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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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경제학
최형천
전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경영학 박사

  • 입력날짜 : 2019. 04.14. 20:53
필자의 지인 중에는 현금 결제만을 고집하는 분이 있다. 카드로 지불하면 카드수수료를 판매자가 부담해야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이런 분들은 이제 제로페이가 출시되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소상공인 입장에서 카드수수료는 많지 않은 수익을 고스란히 갉아먹는 피할 수 없는 좀도둑이나 다름없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정부와 지자체의 주도로 제로페이가 시행되고 있다. 제로페이의 사용은 우리 국민의 생활경제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적 혁신이다.

우선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이름처럼 카드수수료를 제로까지 줄일 수 있어 수입이 나아진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40%의 소득공제 혜택이 있어 절세할 수 있는 고마운 제도이다. 하지만 처음 시행되는 제도라서 다소 이해가 필요하겠다. 우선 현행 신용카드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대기업에는 낮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소상공인에게는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여 소상공인에게 불리하게 되어있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상인은 카드수수료에서도 대기업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실정이며, 이러한 어려운 영세상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국가차원의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제로페이 사용은 착한 소비의 시작이다. 거대 기업은 심리학까지 동원하여 정교한 마케팅과 광고로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까지 조작하고 있다. 카드를 사용하여 즉시 구매하는 것이 마치 신분을 과시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사실 카드이용은 외상이고, 대출이며, 분명한 빚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매달 급여를 받으면 지난달 카드 대금으로 몽땅 빠져나가버리니 월급날이 돌아와도 재미가 없다. 제로페이 사용은 통장잔고 범위내서 가능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지만 충동구매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 불필요한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이렇듯 제로페이 사용으로 지출통제가 가능하므로 목돈을 모으는데 도움이 된다.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하지 않고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면서도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착한 소비습관을 제로페이가 제공할 것이다.

제로페이 사용은 가치소비다. 와튼스쿨 동창 4명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안경 제조판매 벤처기업인 ‘와비 파커’는 세계인구 중 10억 명이 눈이 나쁜데도 돈 때문에 안경 없이 불편한 생활을 한다는데 주목한다. 그래서 고객이 안경 하나를 구입하면 또 하나를 가난한 이웃에게 기부해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100만 명 이상에게 안경을 선물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가치소비의 매력 때문에 회사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신장하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침체기를 맞게 되자 소비에 대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성숙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기대하며 가치소비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을 하려 한다. 가치소비는 내가 사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생각하는 소비태도이다. 환경이나 윤리는 물론 관계나 지속가능성까지 살펴보면서 소비하는 의식적이며 주도적인 행위이다. 제로페이 사용은 매 구매 시 2~3%의 금액을 영세 상인들에게 기부하는 효과가 있는 확실한 가치소비이다.

제로페이 사용은 사회적 진보에 동참하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심각한 사회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은 시민들이 그 문제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용감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사회 전체의 복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억압당하는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좋은 시민이 아니다’라고 직언한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거대 담론보다는 작은 믿음과 작은 실천,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되는 작은 변화다. 문명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다수 시민의 참여가 필연적인 것처럼 제로페이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가 절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의지처가 되어준다면, 사소하더라도 꾸준한 방식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또 누군가가 나에게 에너지를 얻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히 변한다. 우리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더 힘 있게, 우리답게, 가슴 뛰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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