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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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소년과 정치인
이윤배
조선대 명예교수

  • 입력날짜 : 2019. 04.22. 19:02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은 동화 중에 ‘늑대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양을 치던 소년이 늑대가 나왔다고 마을로 달려 내려오자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막대기를 들고나와 소년과 양을 보호하고자 야단법석을 떤다. 그러나 소년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소년은 그것이 재미있어 다음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골탕 먹인다. 그런데 세 번째 정말 늑대가 나타나 양을 물어 죽이고 소년에게 해코지할 때 소년이 아무리 소리쳐도 마을 사람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소년은 결국 늑대에게 해를 당하고 만다. 이처럼 거짓의 끝은 자신을 스스로 올가미에 묶어 자유를 구속하고 고통받게 하는 일일 뿐이다.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사실이든 아니든,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한번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열 번 이상 더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양산하는 셈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의 로버트 펠드먼 교수의 실험 결과가 흥미롭다. 서로 알지 못하는 100여 명을 대상으로 2명씩 짝지어 자기 소개를 하도록 한 결과, 평균 10분에 세 번 정도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 동안 무려 12번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의 거짓말들이 모두 나쁜 것이었을 것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하는 거짓말에 악의를 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얀 거짓말’이라고도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한 거짓말일 뿐이다. 예를 들면 죽을병을 진단받은 환자에게 가족들이 ‘괜찮다’라고 거짓말을 해 안심시키는 것과 같은. 그런데 ‘상대방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고 상처를 주지 않을 때는 거짓말을 해도 된다’라고 탈무드에서조차 하얀 거짓말을 권유하고 있으니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거짓말의 압권은 정치인들이 하는 거짓말이다. 범죄나 어떤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 중에서 자신의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 사례를 지금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문제가 불거지면 먼저 법적 대응이라는 칼자루를 들이대며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더는 빠져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잘못을 시인하고 고개를 떨군다. 너무나 익숙해진 광경이지만 이런 사례들은 사회 전체의 피로감과 실망감을 누적시키고 사회적 신뢰마저 갉아먹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귀한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77일 만에 법원의 보석허가로 풀려났다. 그렇다고 김 지사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진실은 결국 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 지사는 초지일관 잘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가 몸담은 여당에서조차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 대신 1심 재판 결과에 불복을 선언하고 나섰으니 유구무언이다. 야당도 아닌 집권 여당이 왜 이처럼 발끈하며 나서는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아마도 촛불로 태어난 현 정부의 정통성에 흠집이 날까 봐 그런 것이라면, 국민 앞에 더 당당하고 더 솔직해져야 옳다. 권력이란 거짓이 아닌, 솔직할 때 더 공고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으로서 불법 행위나 잘못을 했다면 국민 앞에 솔직히 용서를 구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으면 될 일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는 구하는 데 누가 비난의 돌팔매질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왜 이 평범하고 단순한 진리를 모른 척 고집스럽게 거짓의 길을 가고자 하는지 그 속내가 정말 궁금하다. 인간사 모두 끝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자, 이치다. “정치인들은 입에서 나오는 하품 빼고는 다 거짓말이란 옛말도 있고, 정치가들이란 강(江)도 없는데 다리를 놓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에 있는 구절이 특히 실감 나는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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