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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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김홍일
최경환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 입력날짜 : 2019. 04.24. 18:30
김대중 대통령은 10년 전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는 말을 남겼다. 김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일기의 한 대목이다.

납치, 망명, 감옥생활, 사형선고 등 김 대통령이 받은 고난과 고통의 세월은 대통령 당선과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정치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가 보상으로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형수가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틱한 생애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고통이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개척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그러나 아들 김홍일 의원의 처지와 그런 아들을 속수무책 바라보아야만 했던 김 대통령을 생각하면 다른 생각이 든다. 지난 20일 김대중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의원이 71세로 생애를 마감하고 아버지가 있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김 의원은 5·18 구묘역에 안장되었다.

김홍일 의원은 김 대통령과 차용애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이다. 김 대통령에게 딸(소희)이 있었는데 아들 홍일이 태어나자마자 딸을 잃었다. 딸을 잃고 얻은 아들이 된 셈이다.

김홍일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가장 믿음직한, 든든한 맏아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김홍일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외곽조직 연청(민주연합청년동지회)을 이끌었으며 3선 의원을 지내며 97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과 최초의 여야간 수평적 정권교체에도 기여했다. 김 대통령을 따르는 많은 동교동계 인사들은 김홍일 의원의 인품, 포용력, 리더십을 보고 그를 따랐다.

그러나 40대 후반 김홍일 의원에게 찾아온 병마는 세상에서 얻은 어떤 영예로도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이 되었다. 병은 80년 5·17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수사를 받으면서 얻은 것이다. 김 의원은 회고록 <나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않는다>에서 그때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 이름은 빨갱이 새끼였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 차라리 죽이라고 했다. 나는 혹여 고문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할까 두려워 수사관 눈을 피해 자살을 기도했다. 책상에 올라가서 머리를 시멘트 바닥으로 처박고 뛰어내렸다. 이때 목을 다쳤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목을 다친 것이 이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문 피해자로 파킨슨병을 얻어 돌아가신 분이 또 한분 있다.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한 민청련 의장 김근태 복지부장관도 파킨슨병이 발병되어 일찍 돌아가셨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나 루게릭병과 같은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병이 심해지면서 김홍일 의원은 제대로 서지도 앉지도 못했고,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의 병이 결국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김홍일 의원의 병은 아버지 김대중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모함하려는 수사기관에 저항하면서 얻은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퇴임 후 동교동으로 돌아와 사셨다. 아들 김홍일 의원의 집은 서교동에 있었다. 김 대통령은 외부 일정을 마치고 동교동으로 돌아오시다가 앞자리에 앉은 비서와 운전기사에게 말하곤 했다.

“차 돌려라. 서교동으로 가자. 홍일이 집으로 가자.”

김 대통령은 서교동 큰 아들 집으로 가 병석에 있는 아들 곁에서 한참 있다가 동교동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때는 이미 김 의원의 병세가 극히 악화돼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한마디 대화도 나누질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들아, 홍일아,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이렇게 큰 병을 얻다니 미안하구나.”

김대중 대통령도, 김홍일 의원도 세상을 떠났다. 엄혹한 시절 민주화에 헌신한 분들이 겪었던 고통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어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도 받았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은 고스란히 아픔으로 남아있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의 말에서 자신과 가족이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까지도 다 담았는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김홍일 의원의 생애와 가족사를 돌아보며 그 아픈 역사와 고통과 헌신도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역사의 발전은 이런 아픈 인간사의 축적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성공과 환희의 역사 뒤에 숨어있는 아픈 인간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아픈 기억 위에 역사는 앞으로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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