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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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에
이종환
남도학숙은평관 사무처장

  • 입력날짜 : 2019. 04.28. 19:28
지난번 광주에 내려가는 길에 모처럼 고속버스를 이용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려면 우선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로 가야 합니다. 사는 곳에서 가까운 녹번역에서 3호선을 타면 열여섯 개 역을 지나야 하고 40분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면 당연히 빈자리가 없을 때가 대부분입니다. 어디에 서야 할까 내심 고민이 시작됩니다.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 얻을 것 없는 고민이 서 있는 내내 계속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 비슷한 경우를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지하철에서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것인지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답니다. 언젠가도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 바로 앞에 서 있었고, 역시 신도림역에서 그 사람이 일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얼른 그 자리로 옮겨 앉고 앞에 서 있던 친구를 자기 자리에 앉히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합니다. 노인이 탑승하자 청년들이 얼른 일어서서 자기 자리로 모셔 앉히는 것을 두세 번 봤는데, 그 광경에 대해 현지 교민이 이 전철을 저 노인들이 청춘을 바쳐 건설했으니 당연하다고 답변했다 합니다. 물론 이것은 노인에 대한 배려 부재보다는 만남의 없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역시 세대 간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같은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내놓은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에 세대갈등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노인세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먼저 ‘다른 세대보다 경험도 많고 지혜롭다’는 질문에는 48.6%가 동의(부동의 20.7%)했고, ‘현재 존경받지 못한다’에 대해서는 34.1%가 동의(부동의 21.3%)했습니다. 또한 ‘다른 세대보다 정부 지원을 더 받고 있다’에 대해서는 47.8%가 동의(부동의 15.9%)를, ‘정치적 영향이 너무 크다’ 에 대해서도 동의가 35.2%로 부동의(15.5%)보다 높았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원은 ‘기성세대보다는 노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으로 보이며, 세대갈등 해소를 위해 청년과 중장년, 노인들이 소통할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세대 간 갈등이라거나 노인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아쉽게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을과 을, 을과 병의 대립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정작 구조적인 문제나 갑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은 거론하지 않은 채 어렵게 살아가는 을과 병의 대립 관계로 판을 이끌어가려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였습니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일반 미국인은 가뜩이나 줄어든 파이에서 조각을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한다. 민간기업 근로자는 공무원을 미워하고, 노조 근로자는 비노조 근로자를 경계하고, 중산층은 빈곤층과 경쟁한다. 이렇듯 국민은 한 배를 탔다고 느끼지 않고 점점 각자가 홀로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도 말합니다.

저출산에 따라 생겨나는 생산연령층의 감소에 대해서 걱정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대한 부양의 부담을 유독 부족해지는 청년층에게만 연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노인들에게는 100세까지 살게 될 거라고 말하면서 보험을 홍보하고, 일자리가 없어 갈 길이 먼 청년들에게는 ‘힘없고 가난한 이 많은 노인을 너희가 다 먹여 살려야 해. 감당할 수 있겠어?’라면서 자꾸 쿡쿡 찌르는 것 같습니다. 결국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하면 비약이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노인층은 청장년 시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자랑스러운 이들 덕분에 나라는 잘살게 됐습니다. 지금의 청장년들이 먹고 살아갈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고생했더니 대접받는다’ 라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없을까, 가정의 달을 앞에 두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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