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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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마당] 무돌길 9시간 박용서 수필

  • 입력날짜 : 2019. 05.06. 17:45
광주광역시 및 여러 단체의 후원과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주최로 시행한 2015년도 춘계 ‘무돌길’ 걷기행사에 참가했다. 무돌길은 총 연장 51.8㎞ 중 이번에 43㎞를 1박 2일간 걷는 행사다. 주최 측에서는 예상인원을 500여 명으로 했다는데 실제 참가한 인원은 200여 명쯤 되었다

이른 아침 집결장소인 각화중학교 교정에 도착해 보니 함께할 다섯 명의 친구들이 먼저와 반겨준다. 모두 1박 2일간에 필요한 물건들로 배낭이 가득해 보인다. 출발 전 행사로 각화중학교 학생들의 사물놀이와 여성봉사단체에서 난타 공연이 교정을 뜨겁게 달구었고, 이어서 결전에 대비한 준비운동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고 산악인이나 대학생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머리가 하얀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 행사에 많은 사람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백리길 이상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08시 50분 드디어 출발했다.

우리는 안내자가 이끄는 선두 그룹에 나아갔다. 뒤따라 걸으면 같은 길이라도 훨씬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 깨끗했다. 널따란 도로는 샛길로 접어들더니 이리저리 이어진다. 기다란 원색의 행렬은 자연과 잘 조화된 한편의 동영상을 보는 듯했다. 장엄한 무등산 정상을 우러르며 산자락을 잇는 무돌길은 무등산 둘레를 한 바퀴 휘돌아 가는 진기한 코스다. 그 옛날 봇짐장사나 나뭇짐을 지고 나르며 생을 일구어 나갔던 옛길을 찾아 복원하고 이를 연결하여 2010년도에 ‘무돌길’을 개통하게 된 것이라 한다. 마을 골목길도 지나게 되지만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건너기도 했다. 곳곳에 수백 년 역사의 흔적들을 엿 볼 수 있었고, 전래되어 온 문화유산들을 살펴보는 기회이기도 했다.

광주 북구 구간을 벗어나 담양구간으로 접어들었다.

각종 단체에서 걷기 행사를 주최한 것을 종종 보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으나 막상 참여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발길 따라 수 없이 변화되는 주변 환경을 살펴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 기분은 참으로 즐겁기만 했다. 잠시 뒤를 돌아볼 수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낭만과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내를 지나 다시 우거진 숲속으로 이어졌다. 실바람이 일었다. 땀을 식히기엔 부족해서 더욱 사랑스러웠다. 하얀 솜털 구름도 떠 있다. 안내자는 도중에 유명지역에 대한 설명과 특색 및 유래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산속을 빠져나오자 아늑한 마을 어귀가 보였다. 이때 아름다운 색소폰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이 마을에 무슨 경사스러운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오늘 행사에 특별 초대한 6명의 악사들이라 한다. 참으로 고마운 배려며 흥겨운 여흥이다. 이 마을은 국립공원 관리공단 측에서 ‘명품마을’로 선정한 ‘평촌’이다. 아름답고 깨끗한 선율은 가뭄에 단비같이 촉촉이 녹여 온 누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꿀맛 같은 점심 도시락이 제공되었다. 마을 앞에는 거목의 당산나무와 정자, 하천의 물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흥겨운 시간이 끝나자 다시 여장을 챙겨 우적우적 걷기 시작했다. 만일의 응급사태에 대비한 비상용차량이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깊고 얕은 산자락에는 잡초더미에 덮인 묘(墓)들이 을씨년스럽다. 천하의 영웅호걸도 죽게 되면 이 모양 이 꼴 아니겠는가! 하루살이와 무에 다를까.

평소 내가 좋아하는 옛시조를 떠올리며 읊어 보았다.

청초(靑草)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은 어듸두고 백골(白骨)만 무첫난이

잔(盞)자바 권하리 업스니 그를 슬허 하노라

이 시조는 백호 임제(1549~1587)가 평안도사(平安都事)로 부임하는 길에 잡초가 무성한 황진이 무덤 앞에서 읊조린 시조다. 일행들은 박수로 반겨주었다. 이 시조의 낭송은 피곤함을 잠시 잊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담양구간에서 화순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우린 서로에게 무슨 말이건 건네야 했다. 피로엔 웃음이 보약이다. 심각한 이야기는 안 된다. 카톡에 오르내리는 유머나 알맹이 없는 싱거운 말들에 덩달아 웃었다.

그런데 차츰 내 발바닥이 둔해지고 뜨거워짐을 느꼈다. 꼭 뜨거운 물에 덴 것 같다. 평소에 없었던 현상이다. 모두들 지쳐 말소리 웃음소리가 줄어들었다. 힘이 들어 몸은 무겁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무슨 극기 훈련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이다. 쉬고 나면 다리는 더 무겁고 이곳저곳 쑤시고 아팠다. 낭만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8시간쯤 걸었을 것 같다. 막막하고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방법이 있다면 무조건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게 세상 이치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화순 OK목장가든에 도착했다. 성취감에 만족스러웠다. 오늘 27㎞를 걸었다. 예정 시간보다는 20여 분 빠른 9시간10분 만에 도착 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닭백숙과 홍어회에 막걸리가 푸짐했다. 기막힌 맛이다. 무슨 큰일이나 이뤄낸 듯했다.

다음은 화순구간에서 광주동구 구간을 걷는 날이다.

일어나 보니 내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생겼음을 발견했다. 더 걸을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져 비상차량에 탑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낭패가 또 있을까! 친구들은 양말 두 켤레를 포개 신을 줄 아는 지혜가 있었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남은 거리는 16㎞(약 6시간 소요) 출발 시 많았던 인원들은 중간에 포기해 버렸는지 완주 인원은 50여 명에 불과했다.

누군가 내게 “걷기행사가 있다면 또 참여 할 것인가?”하고 묻는다면 “물론 참가한다. 걷기 여행의 진수를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번같이 먼 길이 아니길 바라면서”


<약력> 조선이공대 정년, 문학춘추 수필등단, 광주문인협회, 문학춘추작가회 회원, 공저 ‘木理로 가는 길’ 1, 2집, 현 무진주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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