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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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는 얼마나 더 울어야 하나
나의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 입력날짜 : 2019. 05.09. 19:15
아이들 같은 자연, 자연 같은 아이들. 시인은 늘 자연과 아이들을 중심에 놓는다. 가만있는 자연을 그윽이 들여다보며 우리네 사람살이에 접목하는 솜씨가 탁월해 소월과 백석을 잇는 시인이란 평을 듣는다. ‘섬진강’ 연작시로 이름을 날려 ‘섬진강 시인’이란 애칭을 갖고 있는 그는, 김용택이다.

시인의 펜에 소쩍새가 날아든다. ‘너를 부르러 캄캄한 저 산들을 넘어 다 버리고 내가 왔다/ (중략) / 하얀 찔레꽃에 꽃잎만/ 봄바람에 날리며/ 그리운 네 모습으로 어른거리는/ 미칠 것같이 푸르러지는/ 이 푸른 나뭇잎 속에/ 밤새워 피를 토하며 내가 운다’에는 ‘소쩍새 우는 사연’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오늘 처음 소쩍새가 울었습니다/ 돌아눕고 돌아눕다 잠들었습니다/ 내 야원 어깨에 달진 얼굴 하나/ 적막하게 묻어 있습니다’엔 ‘슬픔’이란 이름표가 달려 있다.

시인은 뭔 일로 피를 토하며 밤새껏 울고, 돌아눕고 돌아누웠나? 한낱 날짐승에 지나지 않은 그 자(者)에게 통째로 마음을 빼앗겨 가면서 말이다. 타고난 울림통 때문일 것이다.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쉬지 않고 ‘소쩍 소쩍’ 또는 ‘소쩍다 소쩍다’ 하고 울어대는 소쩍새. 그 자의 목소리는 몹시 처연하다. 산밑에 사는 나는 그 자의 목청을 들어 봐놔서 잘 안다. 술 마시고 밤늦게 귀가할 때, 혹은 야밤에 밖에 나와 ‘도둑담배’를 피울 때 그 자의 육성을 만나곤 한다.

이상도 하지, 시인의 소쩍새가 내 눈엔 ‘광주’로 들어온다. ‘그 봄’을 울고 있는 것 같다.

1980년 5월, 26일치 밤이 가고 27일치 밤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상무충정작전’이라 이름 붙인 계엄군의 광주재진입작전이 개시된 건 27일 밤 1시였다. 모처럼 하숙집에 들어가 세상모르고 잠에 취해 있던 나는, 용수철이 튀듯 일어났다. ‘광주’가 피를 토하며 울고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광주를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스물한 살 박영순(여)은 도청 방송실에서 광주의 새벽을 깨웠다. 온 광주가 다 들었다. 그 처절한 외침은 소쩍새보다 진했다. 시계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기억에 없다. 3시쯤 되었을 거다. 이로써 나(광주일보 전신인 옛 전남일보 4년차 기자)는 ‘광주’에 두 개의 죄를 지었다. 쓰지 못한 죄, 그날 새벽 ‘광주’의 부름에 응하지 못한 죄. 돌아눕고 돌아누우며 그 새벽을 뒤척였을 뿐이다.

그 새벽, 그 ‘소쩍새’ 이후 광주는 죽는다. 아무도 광주를 열지 못한다. 신문과 방송엔 큼지막한 쇠가 채워졌고. 그니까 그게 광주의 최후의 말이었다.

지난 3일 광주여성재단에서는 ‘서른아홉의 5·18, 마흔의 5·18’이란 이름의 워크숍이 열렸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고문,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 이윤정 오월민주여성회장, 박영순 오월민주여성회 부회장, 이춘희 광주 북구여성인력개발센터 관장 등 ‘오월여성들’이 여성의 5월을 이야기했다. 혹독한 고문의 추억, 잔인한 감방살이, 지독한 감시와 탄압, 트라우마 등을 증언하며 울먹거리자, 냅킨 몇 장씩이 긴급 배포되었다. 플로어 질문도 눈물을 섞었다. 맨 나중 순번인 나는 죄가 하나 더 있음을 알아차렸다. ‘고통을 받지 않은 죄’. 내 말의 시작은 그래서, ‘부끄럽다’였다.

광주의 비극은 27일 새벽 1막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이어 2막, 3막이 오른다. 80년 광주를 실패한 뒤 87년 6·10민주항쟁을 승리한 것까지가 ‘광주 2막’이라면, 전두환ㆍ노태우 등 전두환그룹(신군부)을 나라가 잡아 가둔 90년대까지는 3막이 되겠고, 그 이후는 4막이라 하겠다. 자꾸 광주를 건들어 쌓는 지만원이 등장한 것도, ‘전두환 회고록’이 나온 것도, ‘5·18 망언 3인방’이 광주에 불을 놓은 것도 4막인데, 요것들 다 ‘광주테러’다. 저들의 반격은 놀랍다. 그냥 ‘반격’으로 읽으면 손해가 오고 ‘공작’으로 읽으면 득이 될 거다. 큰 코 다칠 수 있을 거 같아 해두는 말이다.

지금, 서른아홉 번째 새벽이 우리 앞에 서 있고, 광주의 진실은 벌렁 뒤집힌 채 우리 앞에 서 있다. 광주를 거꾸로 그린 그림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딱 하나만 적시해 볼거나.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말한다. “(광주사태) 당시 나는 계엄군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지시하거나 실행하기 위한 그 어떤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참석한 일이 없다”고 회고록에서 단호하게 잡아뗀다. 하지만,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의 5·18 행적들을 발라내다 보면 ‘빨간 거짓’임이 드러난다. 전두환이 5·18 기간 중 국방부에서 매격일로 열린 ‘광주사태 대책회의’에, 자위권 발동을 결정한 국방부회의에, ‘광주재진입작전 최종 결정 회의’ 등에 참석한 것이랄지, 최규하 대통령을 광주에 내려 보내 선무방송을 하도록 압박한 일이나, 공수부대한테 6천300만원이란 거액과 함께 소 7마리를 보내 ‘잔치판’을 열어준 것 등은 뭐란 말인가. 요런 것들이, 자신이 지시해 비밀리에 만든 ‘제5공화국 前史’ 등을 통해 40개 넘게 확인되고 있음이다. 이래도 ‘해당 사항 없음’인가. 그는 그러므로 5ㆍ18을 총지휘한 것이 되는 것이며, 이럴진대 그가 ‘5·18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써먹을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쩍새가 얼마나 더 섧게 외쳐야, 그는 ‘숨겨둔 광주’를 ‘선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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