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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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전쟁’과 5·18, 그리고 미국
김진수
본사 서울취재본부장

  • 입력날짜 : 2019. 05.14. 19:06
바른미래당 김동철 의원(광주 광산갑)이 지난 6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을 앞두고 미국 측 기밀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 의원은 이 성명을 통해 “올해 4월12일 미국 정부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이 저지른 납치·고문·암살 등 이른바 ‘더러운 전쟁’에 관해 미국 백악관, 국무부, 연방수사국(FBI) 등 16개 기관이 보유하고 있던 5만여 쪽의 자료들을 기밀 해제해 아르헨티나 정부에 전달했으며, 칠레·엘살바도르·과테말라 역시 미국 측으로부터 관련 기밀 자료들을 받은 바 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언급한 ‘더러운 전쟁’이란 무엇인가.

아르헨티나에서 3월24일은 ‘진실과 정의를 기억하는 날(Day of Remembrance for Truth and Justice)’이라고 불린다.

43년 전인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육군사령관 호르헤 비델라를 중심으로 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페론 정권을 무너뜨리고 군부 정권을 세우는 사건이 벌어졌다.

비델라는 쿠데타 직후 라몬 아고스티 공군사령관, 에밀리오 마세라 해군사령관과 함께 군사평의회를 구성해 의회를 해산하고, 사법부·정당·노동조합의 활동을 중지시켰다. 이 군부 정권은 1983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해 무너질 때까지 집권했다.

비델라 정권은 집권하는 동안 좌파 혹은 게릴라단체를 소탕한다는 명분 아래 ‘더러운 전쟁’(Guerra sucia)을 전개해 인권운동가, 반체제 지식인, 노동운동가 등 정치적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했다. 그 결과 3천여명의 시민들이 재판 없이 사형을 당했고, 3만여명의 시민들이 실종됐다.

이 ‘더러운 전쟁’ 과정에서 미국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당시 미국은 아르헨티나의 재정적, 군사적 원조자였으며 미국의 지원 없이 비델라의 ‘더러운 전쟁’은 결코 지속될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기밀 해제된 미국 외교문서는 당시 미국의 국무부장관이었던 키신저가 이 전쟁을 묵인했고, 의회의 제재 움직임을 방해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미국을 우방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당시 정보공개법에 의해 워싱턴에 있는 국가안보기록물에서 기밀 해제된 자료는 1976년 10월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외무장관 쎄사르 구제티 장군의 방미 당시 이뤄진 2건의 대화록이다. 이 가운데 1976년 10월7일자 대화록에 따르면 키신저는 구제티 외무장관에게 그가 무엇을 하던 간에 미국이 지원할 것임을 확언했다.

키신저는 “당신들의 성공은 빠를수록 좋다. 인권문제들은 커져가겠지만… 우리는 안정적인 상황을 원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불필요한 어려움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미국) 의회 회기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걸 끝낼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 무엇이든 당신들의 자유를 회복시킬 수 있다면 그런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하는 등 사실상 ‘더러운 전쟁’을 묵인했다.

외교 무대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냉혹하게 실천했던 핸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미 1970년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 좌익이라는 이유로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부추겨 군사 독재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던 터여서 그에 대한 평판은 더욱 손상됐다.

결국 40년 뒤 아르헨티나를 국빈 방문한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더러운 전쟁’ 때 미국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오바마는 군사 쿠데타 발발 40주년이던 2016년 3월24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조성된 군사독재 희생자 추모공원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어두운 시대 초기의 미국 정책에 논란이 있다”면서 “미국은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 늦었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그렇다”고 반성했다.

오바마는 그러면서 ‘더러운 전쟁’과 관련해 “미국이 보유한 군사·정보 기밀자료를 추가로 공개해 독재정권 유지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3년이 지난 올 4월 결국 이행됐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국에는 발포 명령자, 집단 암매장 여부 등과 같은 ‘5·18’의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핵심적인 기밀자료가 존재하는 것 일까?

정황은 차고 넘친다.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특별기자회견장에서 ‘전두환이 5·18 당시 계엄군의 발포 직전 광주를 방문해 시민군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증언을 한 김용장 전 미국 정보부대 군사정보관은 “5·18 당시 40여건의 정보를 미국 국방성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탐사보도기자 팀 셔록은 오래전부터 ‘광주’ 관련 미국 문서를 확보해 5·18을 추적보도하고 있다. 그는 2017년 미 국방정보국의 비밀문서를 입수한 후 이 문서를 토대로 미국이 5·18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군사작전을 하도록 용인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기도 했다. 팀 셔록 기자가 거의 10여년에 걸쳐 미 국무부와 국방부, CIA 등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확보한 문서는 3천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운 전쟁’과 관련한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사태 수습과정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8 당시 광주에게 미국은 무엇이었는지, 당시 카터 행정부는 그들이 입만 열면 강조하는 인권에 부합하는 결정을 했던 것인지 이제는 밝혀야 한다.

정부는 미국 백악관,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등의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자료의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공개를 미국 행정부에 공식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국내로 반입하기 위한 외교적인 조치도 조속히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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