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1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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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양민학살사건 전시를 보고
홍인화
전 광주시의원·국제학박사

  • 입력날짜 : 2019. 05.16. 18:27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국가란 무엇인가’의 저자, 유시민이 목청높이 외친 국가에 대한 소견이다. 한 사람이라도 국민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국민을 참척한 경우가 가슴 아프게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그것도 현대사에서. 제주 4·3 항쟁, 여순사건, 광주 5·18민중항쟁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가 더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6일 함평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사건이다. 같은 해 11월20일, 지리산과 전라도 일대에서 활동하는 공비 토벌을 맡고 있던 육군 제11사단 소속 20연대 2대대 5중대가 함평군 해보면·월야면·나산면 등에 투입되었다. 12월2일 공비들의 습격을 받아 2명의 전사자를 냈고 5중대는 보복으로 이른바 ‘견벽청야’(堅壁淸野)작전, 즉 공비와 주민을 구별하지 않고 해당 지역을 소멸시키는 작전을 내렸다. 양민학살은 1950년 12월6일경부터 시작되었다. 군인들이 주민들을 무차별로 총격했다. 학살은 다음해 1월 중순까지 이어졌고, 마지막은 1월 14일 나산면 우치리 소재 마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월15일 나산면 면장 등의 항의로 중단됐다.

함평양민학살사건은 1960년 5월 한국일보 이상문 기자가 ‘나는 시체더미서 살아나왔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2005년 재조사에 들어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주민 249명이 국군에 의해 집단 학살당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정부는 2009년 처음으로 유족회에 위령제 예산 700만원을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함평양민학살사건을 소설로 집필한데 이어 기획전으로 꾸리는데 적극 참여한 이가 있다. 소설가 백은하다. 지난해 연말께 펴낸 소설집 ‘의자’ 중 ‘귀향’이 바로 함평양민학살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그는 미어지는 가슴을 보듬어 안고 ‘귀향’을 펴낸데 이어 곧바로 이를 전시회로 풀어냈다. 소설 속에서도 화자는 고통에 휘말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소설가 자신이다. 현대사의 굴곡진 아픔 앞에서 묻어둘 수 없다는 각오와 다짐을 현실에 구현했다. 그게 지난 5월 9-11일까지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선보인 ‘함평양민학살사건의 기억’ 전시다. H탐사팀과 백은하는 함평양민학살사건에 대해 취재하면서 가슴 먹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걸 계속 묻어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설로 엮어냈고 전시로 꾸리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전시가 짧게 이뤄졌지만 망각에서 깨어나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고 더 많은 말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는 주체임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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