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1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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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님!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국회의원

  • 입력날짜 : 2019. 06.12. 19:29
여사님! 박 실장입니다.

생전에 손수 고르신 영정 사진은 너무도 곱습니다. 여사님께서 금방이라도 ‘박 실장’ 하시며 걸어 나오실 것 같습니다. 여사님께서는 가족, 친지들이 불러주신 찬송가를 음미하시며 평온하게 떠나셨습니다.

지난 8개월, 제 아내를, 김홍일 전 의원을, 이제 여사님까지 똑같은 곳에서 떠나보내는 심정은 슬픔보다 더욱 큰 공허함, 그리움입니다. 슬픔은 결국 그리움과 공허함이라는 것을 여사님을 보내며 깨닫게 됩니다.

여사님은 독실한 기독교 모태 신앙인이셨습니다. 늘 성경 속에 사셨고 선교사처럼 주변에 헌신과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사님의 정무 감각과 정치적 식견은 제가 아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더 반짝이셨습니다. 부족한 것 하나 없는 여사님께서 가진 것 없고 가난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연을 맺으신 그 자체가 여사님의 혜안이셨습니다.

여사님과 대통령님 두 분은 부부의 연을 넘어 동반자였습니다. 독재에 투쟁하시고 정권을 교체한 후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고민하셨던 동지였습니다.

여사님은 만인의 연인이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투석으로 힘들어 하셨던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일기장에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너무 기쁘다’(2009년 2월 7일),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2009년 1월 11일)이라고 하시며 사랑스러운 여사님과의 아름다운 삶을 찬미했습니다.

저는 ‘김대중은 이희호 여사로부터 탄생한다’고 했습니다. 위대한 국민은 ‘인간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선택했지만 여사님께서는 인간 김대중을 선택하셨고,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드셨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늘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여사님은 늘 대통령님 반 발짝 뒤에 서서 대통령께서 언제나 국민보다 반발짝 앞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동지로서 늘 동행, 동석하셨지만 타인 앞에서 대통령님의 대화에 절대로 섞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단 두 분만 계시면 대통령님을 위해 가차 없는 비판도 하시고 그러면 또 심통이 나신 대통령님을 격려도 하셨습니다. 대통령께서 고문의 고통을 견디고 대통령만 빼고는 뭐든지 들어 준다는 독재정권의 회유를 뿌리치신 그 힘도 여사님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사님께서 걸어오신 오솔길은 민주주의, 평화, 박애를 위한 신작로입니다. 여성 지도자로서 양성평등법 제정, 여성부 신설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고, IMF 때는 결식아동을 위한 재단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당연히 북한 어린이, 청소년까지 확장되었고 활발한 평화운동으로 2대에 걸쳐 북한의 지도자를 만난 전 세계 유일한 지도자이셨습니다.

여사님께서는 단 일분일초도 사사로이 보내지 않으신 이 시대의 거인이셨습니다. 한없이 가냘프고 약할 것만 같으신 여사님께서 떨리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민주주의를 말씀하실 때에는 우리도 국민들도 없던 힘까지 생겼습니다.

저는 대통령님 사후 여사님을 더욱 존경합니다. 여사님께서는 김대중평화센터이사장으로서 대통령님 유지를 마지막까지 실천하셨습니다. 떠나실 때까지도 하늘나라에서 국가와 국민,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를 하시겠다는 말씀을 저는 새기겠습니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 비서실장, 서거 이후 10년은 여사님비서실장으로 재직하는 큰 은혜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호남 발전, 민주주의, 한반도 평화, 박애 정신 등 두 분 유지를 받드는데 제 전부를 바치겠습니다.

여사님, 이제 대통령님과 아들 곁으로 가셨습니다. 부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격려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제 아내도 돌봐 주십시오. 여사님을 모셨던 내내 행복했습니다. 그 곳에서 늘 행복하십시오.

여사님! 사랑하고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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