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0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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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을 생각한다
이윤배
조선대 명예교수

  • 입력날짜 : 2019. 06.24. 19:09
몇 년 전에는 ‘웰빙(well-being)’이란 단어가 유행했다. 웰빙은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뜻한다. 또 한때는 ‘나이를 잘 먹어야 한다’라는 의미의 ‘웰에이징(well-aging)’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건강하고 멋지게 나이 드는 것’, 바로 웰에이징의 참모습이다. 늙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엘에이징은 안티에이징(anti-aging)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안티에이징은 노화를 죽음에 이르는 과정으로 생각하며 노인을 쓸모없고 무기력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화두는 단연 ‘웰다잉(Well Dying)’이다. 웰다잉은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 일체를 포함한다. 넓은 의미에서 웰다잉은 존엄사나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하는 DNR(Do Not Resuscitate)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즉 ‘깔끔하게 잘 죽는 것’으로, 보다 적극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존엄사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해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소극적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노인 사망자 수는 29만8천900명으로 거의 30만명에 육박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다 인원을 경신했다. 고령 사회를 맞아 향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32만6천900명으로 이제 태어나는 인구보다 생을 마감하는 인구가 더 많아지는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존엄성을 지키며 인생을 아름답게 잘 마무리하고자 하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고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런데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내의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미미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 자살률이다. 2017년 기준 10만명당 노인 자살자 수는 47.7명으로 전체 평균(24.3명)의 약 2배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4명)과 비교해도 거의 3배 수준이다.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마저 안고 있다.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의 빈곤율 또한 48.8%로 OECD 노인 빈곤율 평균(12.1%)보다 4배 가까이 높다. 이 역시 회원국 중 1위다. 상황이 이러한 까닭에 노년에 이르면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하는 지원책이 마련돼야 ‘극단적 선택’ 역시 줄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따라서 노인 등 취약계층의 자살을 개인의 일탈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자 하는 관점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 덴마크 등 다른 나라의 경우 자살을 개인 문제로 보지 않고 국가와 지방정부, 민간단체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펼쳐 자살률을 낮춰 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3년간 2명의 한국인이 스위스의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안락사, 일명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락사 합법화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실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조력자살이란 의료진으로부터 조력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로써 스위스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민과 외국인 모두에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에 가 안락사를 하기 위해서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든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내에서도 안락사를 합법화해 달라는 청원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양극화와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한 인식 부족이 여전히 ‘웰다잉’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안락사의 경우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치료 불능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 그리고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마냥 손 놓고 안 된다고 안락사를 반대만 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물론 생명은 소중하고 고귀한 것으로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해(害)할 수 없다. 또 살아야 할 사람과 죽어야 할 사람을 선별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안락사 문제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 불치병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들에게 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서 현대판 유배(流配) 생활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고통 없이 죽을 권리마저 빼앗는, 또 다른 인권 침해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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