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0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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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제주 올레 14코스
중산간마을에서 해변마을로, 밭길에서 바닷길로

  • 입력날짜 : 2019. 07.02. 18:18
검은 바위와 에메랄드빛 바다의 어울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본섬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양도가 붕긋 솟아 풍경미를 배가시킨다. 비양도는 1002년(고려 목종 5년)에 분출한 화산섬으로 제주도 화산섬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다.
아내와 함께 제주도를 찾았다. 이번 여정은 오롯이 제주올레걷기에 맞췄다. 오늘은 중산간 마을에서 출발해 해변으로 이어지는 14코스를 걸으려한다. 저지마을은 13코스를 걸을 때 만났던 터라 낯익다. 무엇보다도 마을 뒤에 있는 저지오름이 반갑다.

저지마을을 지나 제주지역 특유의 밭담길을 따라서 걷는다. 현무암으로 감싸인 밭에는 유난히 귀리가 많다. 귀리는 보리종류 중 하나로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지역에서 많이 재배된다. 제주도는 넓지 않은 땅이지만 지역마다 주로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양하다.

‘큰소낭 숲길’을 만난다. ‘큰소낭 숲길’은 큰 소나무가 많은 숲길이란 뜻이다. 이번 코스에서는 작은 규모의 숲길을 여러 개 지난다. 작은 숲을 지나면 밭길이 나오고, 밭길을 지나면 다시 작은 숲길을 만나곤 한다. 현무암 밭길은 아늑하다. 제주도 방언으로 말하면 ‘오시록’하다. 그래서 ‘오시록헌 농로’라 이름 붙였다. 오시록헌 농로는 아늑한 농로라는 뜻이다.

오시록헌 농로를 걷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서 저지오름이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다. 움푹 패인 지형을 뜻하는 제주방언 ‘굴렁진 숲길’도 지난다. 제주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지형이지만 큰소낭 숲길, 오시록헌 농로, 굴렁진 숲길 등 토속적인 이름들이 제주도다운 느낌을 물씬 풍겨준다.
금능해수욕장. 물 빠진 해변은 검은 자갈밭을 드러냈다가 은빛 모래밭이 펼쳐진다.

길은 무명천산책길로 이어진다. ‘무명천’이라는 이름에는 제주 4·3사건 생존피해자인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이 스며있다. 할머니는 4·3항쟁이 한창이던 1949년 1월 12일 토벌대의 총격으로 아래턱을 소실했다. 당시 나이 35세.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목숨이 다할 때까지 외롭고 처절한 고통의 나날을 살아야했다.

할머니는 턱이 없어 말도 잘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55년을 살다가 지난 2004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할머니는 흉측한 상흔을 가리기 위해 무명천으로 턱을 싸매고 살았다. 할머니의 턱과 머리를 감싼 무명천은 4·3사건 생존자의 아픔을 상징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진아영 할머니를 ‘무명천 할머니’라 불렀다. 무명천산책로를 걸으며 제주도가 4·3의 아픔으로부터 치유되고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작은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는 빨갛게 익는 산딸기가 지천에 널려 있다. 아내와 나는 새콤달콤한 산딸기를 따먹느라 걸음을 자꾸만 멈춘다. 농민들이 재배한 작물이면 손을 댈 수 없지만 길가에 널려있는 산딸기라 부담없이 따서 먹는다.

길은 점점 바다에 가까워지고, 밭작물에도 변화가 온다. 그동안 귀리가 주로 차지하고 있던 밭은 이제 선인장으로 바뀌었다. 해변마을인 월령리 근처에 도착하자 밭은 물론 담벼락, 길가까지도 백련초라 불리는 선인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초는 잎이 사람 손바닥만 하다고 해서 손바닥선인장, 부채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부채선인장으로도 불린다.
월령리에는 해변바위틈에서도 선인장이 자생을 하고 있다.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제주도까지 밀려와 해변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월령리는 선인장 자생지다. 월령리에 선인장이 자라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원산지로 알려진 멕시코에서 해류를 타고 이곳까지 밀려와 해변 모래밭이나 바위틈에서 자라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월령리 주민들은 뱀이나 쥐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 울타리인 돌담 옆에 선인장을 심었다. 선인장은 6-7월에 노랗게 꽃이 피고, 11월에는 보라색으로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소화기나 호흡기질환에 좋은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아 이 마을의 고소득 작물이 됐다.

월령리 해변 검은 바위틈에도 선인장들이 자라고 있고, 마을주변에도 선인장이 천국을 이루고 있다. 선인장군락지를 지나니 소박한 월령포구가 기다리고 있다. 월령포구를 지나 해변 돌길을 따라서 걷는다. 가깝게 다가오는 파도가 오랜 친구처럼 정답다. 바다는 먼 바다에서는 진한 군청색을, 가까운 곳에서는 연한 에메랄드빛을 띠다가 내륙에 가까워지면 하얀 파도를 만들어 검은 현무암과 입을 맞춘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바다는 말이 없는 바위들과 사랑에 빠졌다. 바다와 바위의 사랑에 질투를 느낀 인간이 가까이 접근을 하면 파도는 물보라를 만들어 방해를 한다.

해변을 따라 한 구비 지나자 비양도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검은 바위와 에메랄드빛 바다의 어울림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본섬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비양도가 붕긋 솟아 풍경미를 배가시킨다. 이제부터 비양도는 14코스가 끝날 때까지 잠시도 떠나지 않고 든든한 길잡이가 돼준다.
제주도 서쪽지역에서는 가장 큰 항구인 한림항에는 수많은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금능등대는 우리를 금능리 마을로 인도해준다. 정다운 돌담으로 이뤄진 골목길을 지나자 금능포구가 등장한다. 오전 내내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아내는 날씨도 덥고 하니 물회를 먹고 싶단다. 물회를 잘한다는 식당이 있어 들어갔다. 작은 포구인데 알음알음 찾아온 사람들로 식당은 만원이다. 맛있고 시원한 물회에 밥 한 그릇 먹고 나니 원기가 왕성해진다.

금능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물 빠진 해변은 검은 자갈밭을 드러냈다가 은빛 모래밭이 펼쳐진다. 검은 몽돌밭에서는 마을주민들이 조개를 잡고 있고, 모래밭에서는 외지인들이 물놀이 삼매에 빠졌다. 금능해수욕장 앞으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양도가 수문장처럼 서 있다.

금능해수욕장을 지나자 길은 해변 모래언덕을 따라 이어진다. 협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다. 협재해수욕장은 금능해수욕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모래가 풍성하고 아담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협재해수욕장은 비양도가 거센 파도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해변의 운치를 더해준다. 비양도 역시 협재해수욕장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협재포구와 협재리 골목길을 지나 한림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만난다. 옹포마을을 지나는데, 이곳의 옛 이름은 명월포란다. 명월포는 고려 때 삼별초군이 상륙해 고려군과 전쟁을 치른 전적지이며, 고려말 최영장군이 몽고족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상륙했던 포구다.

한림항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여전히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오늘 만났던 몇 군데 포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항구다. 비양도를 가는 배도 이곳 한림항에서 타야한다. 한림항 비양도 도선 대합실 앞에 도착하니 비양도에서 오는 배가 막 들어온다. 비양도를 다녀오는 관광객들의 행복한 미소가 항구에 쏟아진다.


※여행쪽지

▶제주올레 14코스는 중산간마을에서 출발해 해변길로 이어지는 코스로, 중산간의 고즈넉한 모습과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코스 : 저지마을회관→큰소낭숲길→오시록헌농로→굴렁진숲길→무명천산책로→월령포구→금능해수욕장→협재해수욕장→옹포포구→한림항 비양도 도선 대합실
▶거리/소요시간 : 19.1㎞/6-7시간
▶걷는 도중에 식사를 하려면 월령해변, 금능포구, 협재해수욕장에 있는 식당들을 이용하면 된다. 금능포구 향토음식점(064-796-9006)은 지역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물회와 생선구이가 맛있다. 도착지점인 한림읍에는 여러 종류의 식당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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