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0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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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양평 물소리길 1코스 (문화유적길)
오늘도 남한강은 유유한데, 통일조국은 언제 오나

  • 입력날짜 : 2019. 08.06. 18:08
운길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 올라가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양평 물소리길을 걷기 전에 수종사부터 들른다. 운길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에 올라서니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한없이 아름답다. 두 강이 합류하는 모습을 가장 아름답게 보려면 수종사로 가라는 말이 실감난다. 당우들이 두물머리를 바라보며 산비탈을 따라 나란히 배치된 수종사는 정갈하고 짜임새가 있다. 범종각 옆 수령 550년에 이르는 은행나무에는 세조가 수종사 중창을 마치고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수종사를 출발해 양평 물소리길 1코스를 걷기 위해 양수리로 내려간다. 양수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한강을 이루는 곳이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서 예로부터 이곳을 두물머리라 불렀다. 양수리(兩水理)는 두물머리의 한자식 표현이다.

과거 양수리 나루터는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던 강원 정선, 충북 단양과 물길의 종착지인 뚝섬·마포나루를 이어주던 마지막 정착지인 탓에 매우 번창했다. 그러나 1973년 팔당댐이 완공되고 육로가 발달되면서 양수리는 나루터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양수역을 출발한 물소리길은 철로 안쪽 가정천 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진녹색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벼들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양평 물소리길은 남한강변을 따라 걷는 길로 총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각 코스는 경의 중앙선 전철역을 시작점과 종착점으로 하고 있어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와서 걷기에 편리하다. 물소리길 1코스를 걷기 위해 양수역에 도착했다.

양수역을 출발한 물소리길은 철로 안쪽 가정천 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우리가 걷고 있는 물소리길은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를 지나 부용리로 이어지고, 하천 양쪽에는 마을과 농경지가 정답게 펼쳐진다. 진녹색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벼들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죽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가면서 담백하게 꽃을 피워낸 능소화가 가정천의 여름을 아름답게 해준다. 밭가에 핀 접시꽃들은 매미소리에 함박웃음을 짓는다. 오늘은 비가 온 직후인데다 햇볕이 나지 않아 여름철이지만 걷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골짜기를 따라서 걷는데 멀리 청계산이 우뚝 서 있고 골짜기 양쪽으로 높지 않은 산줄기가 이어진다.

곳곳에 물소리길 이정표가 설치돼 있거나 상징리본이 걸려있어 길 찾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서울근교라 골짜기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대입 재수생들이 숙박을 하면서 입시를 준비하는 기숙학원도 눈에 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벼를 바라보며 논두렁길을 걸을 때는 농부가 된 것 같다.
몽양선생 생가 아래로 남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이어 한음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만난다. 이덕형(1561-1613)은 선조 13년(1580) 문과에 급제했고, 선조 때 예조참판 우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청원사가 돼 명나라에 건너가 원병을 요청한 인물이다. 그는 오성 이항복과 어려서부터 친구로 지내면서 둘 다 장난이 심하고 기지가 뛰어나 수많은 일화를 남겼고, 그 일화들은 동화로 소개되기도 했다.

신도비는 묘역 아래 300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방형의 화강암 기대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올린 것으로 이수의 조각이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이 신도비는 한음 이덕형선생이 세상을 떠난 40년 후인 효종 4년(1653)에 건립됐다.

길은 이덕형선생 신도비를 지나면서부터 숲길로 이어진다.

숲길에 접어들자 나무가 내뿜어주는 기운이 상쾌하다. 숲길 아래로는 좁은 골짜기 옆으로 농경지들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골짜기가 점점 깊어지면서 골짜기도 점점 좁아진다. 작은 개울을 건너니 목왕2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은 기존 농촌주택보다 새로 지은 고급 전원주택들이 훨씬 많다. 잠시 마을 앞 도로를 걷다가 다시 개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숲은 갈수록 울창해지고 고요해진다.

자동차소리를 비롯한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전혀 없는 산속에서 새소리 매미소리 바람소리만이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부드럽게 밟히는 흙길은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이런 숲길을 걷다보니 번뇌 망상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명상이 이뤄진다.
몽양 여운형생가.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은 몽양 선생이 1886년 출생해 1908년(22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생가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2011년 서거 64년 되던 해에 복원됐다.

샘골고개에 도착한다. 샘골고개는 부용산과 형제봉 사이 고개이면서, 목왕리와 신원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고갯마루에는 지나는 길손들이 하나 둘 던져놓은 돌들이 작은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고갯마루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길을 따라 올라오는 골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고개를 넘어 신원리로 내려가는 숲길 역시 포근하고 안온하다. 숲을 벗어나자 신원리 마을이 산골짜기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물소리길은 마을 앞길을 따라간다. 마을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이 멀리서 다가온다. 출발지점인 양수리에서 강물을 만난 후 마지막 지점에서 다시 남한강을 만나게 된 것이다.

농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니 몽양 여운형생가와 기념관이 내려다보인다.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 묘골은 몽양 선생이 1886년 출생해 부모탈상을 끝낸 뒤 서울로 이사를 간 1908년(22세)까지 살았던 곳이다. 생가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2011년 서거 64년 되던 해에 복원됐다.

몽양 여운형은 을사조약 이후 국책보상운동에 나섰고, 일제 반식민지 상태에서 민중을 깨우치기 위해 곳곳에서 대중연설을 했다. 3·1운동 이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주로 상해에 거주하면서 외교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8·15 해방을 맞아 여운형은 재빨리 건국동맹을 모태로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여운형은 중도좌파를 대표해 김규식으로 대표되는 중도우파와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해 조국분단과 민족분열을 저지하고 통일정부 실현에 앞장섰다. 1947년 5월 극우청년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몽양이 서거하고 2년 후 김구선생마저 괴한의 총탄에 쓰러졌다. 남북통일정부를 구성하려던 지도자들이 차례로 암살당하면서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통일정부를 이룩하려던 민족의 염원은 사라지고 말았다. 몽양 생가 입구에는 몽양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품과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신원역으로 향한다. 몽양선생이 어릴 적 매일 다녔을 길을 따라 걷는데, 바로 아래에서 남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강물은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총탄에 쓰러진 여운형선생의 한을 머금고 오늘도 말없이 흘러간다.


※여행쪽지

▶양평 물소리길은 양수역에서 용문산관광단지까지 70여㎞에 이르는 이 길은 총 5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그중 1코스 문화유적길은 이덕형신도비, 여운형생가를 거치는 자연과 함께 숨 쉬는 양평의 역사를 따라서 걷는 길이다.
▶코스 : 양수역→비상에듀양평→한음이덕형신도비→목왕리 산입구→샘골고개→몽양여운형 생가·기념관→신원역(8.5㎞/3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양수역(경기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255-5)
▶양수리에는 식당이 많다. 그중에서 세미원 근처에 있는 두물머리밥상(031-774-6022)의 유기농쌈밥, 순두부백반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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