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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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의 차 이야기 (2) 茶로 좋은 인연들을 만나다
가슴 설레고 심장이 뛰던 시절
녹차 한 잔이면 마냥 행복했다

  • 입력날짜 : 2019. 08.14. 18:35
삽화=담헌 전명옥
피천득 시인의 ‘인연’이란 수필이 있다. 그가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난 ‘아사코’라는 여인과의 인연에 얽힌 아름다운 회상이 그려진 작품이다.

‘어느 날 그는 지난날을 생각하며 아사코를 떠올린다. 열일곱이 되던 해 동경에서 유숙했던 주인집 딸, 아사코는 유난히 그를 따랐다. 그는 아사코가 작고 예쁜 ‘스위트 피’ 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첫 만남 후 헤어질 때 아사코는 그의 목을 안고 뺨에 입을 맞췄다.

십 년이 지난 후 두 번째로 동경을 방문하면서 그는 아사코를 다시 만났다. 약간 서먹한 만남이었지만 아사코는 마치 목련꽃같이 청순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아사코를 만난 것은 그 후로 십여년이 흐른 뒤였는데, 시든 백합같이 초라한 아사코의 모습이었다. 악수도 없이 절만 몇 번씩 하고 헤어진 마지막 만남에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 줄 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고 썼다.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다. 또 인연인 줄은 알고 있지만 용기가 없어 다가가지 못해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알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날마다 좋은 인연을 만들려고 하지는 못 할망정 끊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1984년 무렵, 경영자 연수과정 제19기 동기생 중 박영도란 이가 있었다. 예술의 거리에 그녀가 운영하던 동다원(전통차)이 있었다. 그녀는 항상 머리에 비녀를 꽂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웃는 얼굴로 차를 내려주던 그녀의 목련꽃 같았던 모습이 떠올라 가끔 나도 모르게 아련한 마음이 되곤 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가슴 설레고 심장이 뛰는, 차에 대한 이미지가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이따금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 밑바닥에서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용솟음쳐 올라오고 무척 행복해진다. 그때 나는 한창 문학에 관심이 있었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다. 감수성이 예민했기에 이러저런 책을 읽고 시나 수필 등을 썼다. 왠지 쓸쓸하고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흥겹거나 감미로운 대중가요가 흘러나오고 긴 머리로 분위기를 잡던 DJ가 다방을 지배하던 그런 시대는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갔다. 그 대신 예술의 거리에 국악이나 판소리가 실내를 휘감고 도는 전통 찻집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었다. 어쩌다 충장로에 나가면 다방만큼이나 전통 찻집이 점점 많아져갔다. 나는 그 즈음 친구들이나 선배, 직장동료들과 함께 그곳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전통 차는 녹차가 전부였고, 그것이 아니면 대용차가 전부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차를 마시고 쉬며 하루의 피곤을 씻어내곤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나는 차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이 거의 없었다. 다만 녹차 잔 앞에 앉아 있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고 마냥 행복했다. 그때 남편 동료분이 성실하고 성격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는데 차를 내리는 모습에 매혹돼서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차를 접하고 난 후에 제일 큰 성과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은다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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