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월요일)
홈 >> 오피니언 > 시론

자주와 독립을 넘어
강용
학사농장 대표

  • 입력날짜 : 2019. 08.20. 18:57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1992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의 약 64%를 점유하는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이 일본의 핵심소재 3가지 수출 통제로 어려움을 격고 있다. 국가 간에는 원천기반기술도 ‘무기’가 될 수 있으며, ‘힘이 질서’ 라는 것을 일본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분명 우리 것인데 아직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산업은 반도체 산업만이 아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고 나면 딱~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생각난다. 백성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전통주 막걸리, 그런데 그 막걸리를 빚는 종균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술을 빚어 왔으니 막걸리 종균들은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불행히도 극소수의 양조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하는 ‘종균’을 사용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인들이 사용한 것을 계속 사용하거나 누룩이나 빵의 발효 미생물을 사용해서 막걸리를 빚기도 하지만, 자가 소비용이나 소량 발효하는 것과 대량으로 상품화를 위한 발효는 다르다. 대량의 막걸리를 균질하게 만들 수 있는 미생물이 우리에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과실주에 사용되는 효모 역시 북미나 EU 등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어디서 부터가 우리 술일지 좀 애매하다.

식초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도 역시 ‘미생물’이다. 일반적으로 자연 상태에서 수제로 만드는 식초는 사용가능 균과 그렇지 않은 균들도 섞일 수 있는 복합 균이고, 식약처에 사용가능 한 것으로 등록된 종균은 겨우 3종이며 변변한 우리 종균하나 없는 실정이다.

기타 유제품, 퇴비, 의약품, 심지어 스피커 증폭기, 방탄복, 인공피부 등 우리 산업 전반에 다양하게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미생물들은 지금 허공에 떠 다니고, 내 손에 묻어 있을 수도 있지만, 정작 막걸리나 식초 하나 제대로 만드는 미생물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붓 뚜껑에 씨앗하나 감춰 와서 목화를 키운 문익점 선생처럼, 지금도 뒤로 살짝 들여와 사용하는 미생물들도 많다. 그러나 수출은 불가하고 FTA가 체결되면 원천개발자에게 전부 로얄티를 줘야한다.

몇 년 전 한국 농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모 재단의 수상 후보 심사위원으로 참여 한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수상 후보자 중, 일본의 국립대학에서에서 연구를 하다 우리나라가 막걸리 종균하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종균 독립’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귀국해 농촌진흥청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평소 ‘한국농업독립운동’을 외치던 나로서는 참 인상이 깊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연구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 박사는 일본의 균주보다 우수한 막걸리 균주를 찾아내고 국산화에 성공시켰다. 그러나 반도체의 공정에서 보았듯 기업들은 새로운 인프라 구축보다 로얄티 내고 간단히 쓰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 문턱을 넘는 것은 기술만으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식초는 ‘발효식초’(산도 4%이상, 감식초 2.6%이상)와 빙초산을 물과 희석한 ‘희석초산’(산도20%) 두 가지로 나눠진다. 선진국들은 식용을 금지하는 희석초산도 식초라고 불리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지만, 희석초산의 강하고 쎈 맛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3배식초까지 발효 시킬 수 있는 미생물과 공정, 장치가 개발돼야 한다. 현재 산도 10%의 2배 식초는 개발되었고, 3배식초의 개발 진행 중에 있으며 성공하면 건강과 환경에 수많은 논쟁이 되는 ‘희석초산’ 대체와 수출까지 겨냥할 수 있을 것이다. 수입 종균을 대체할 수 있는 국산 종균 5종이 개발 등록 중이라고 한다.

농업과 식품에도 핵심과 원천 기술을 일본에 의지하는 것이 꽤 많다. 모든 것을 국산화하 할 수도 없고 그것이 꼭 경제적인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을 기회로 우리 산업에서 꼭 필요한데 당연히 우리의 기술이거나 우리에게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우리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산업 전반적으로 찾아보고, 그동안 자급화가 왜 안 되었는지 반성과 함께 잠시 반짝하는 관심보다 지속적이고 긴 호흡으로 ‘원천기반기술’의 국산화 계획이 진행되기를 기대해본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