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6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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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퇴허자
광주대각사 주지
제주퇴허자명상원장

  • 입력날짜 : 2019. 08.22. 18:15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개인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고나~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아리아리랑~쓰리쓰리랑~아라리가 났네~~ 응응응~아라리가 났네~~”//

이는 우리나라 팔도아리랑 가운데 유명한 진도아리랑이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강원도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과 더불어 3대 아리랑으로 불릴 정도로 그 유명세가 높다. 과연 우리민요 아리랑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을까? 물론 민화나 민요가 그렇듯이 대부분 자생적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설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우리의 전통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럴지라도 그에 대한 의미와 출처 등을 고찰해 보는 것은 상당히 뜻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우선 아리랑의 시대적 배경은 제1의 물결인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태어났다. 쌀을 생산하고 콩과 보리를 재배하는 전답(田畓)은 농경사회의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었다. 누가 논밭을 몇 마지기나 소유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재산을 평가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천석군 만석군이라 해 소위 갑부들이 드물게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논 서너 마지기와 밭 두어 마지기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부잣집에서 1년 새경을 받고 머슴살이를 하거나 남의 전답을 임대해 매년 추수기마다 소작료를 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허다하였다. 그러니 가난과 흉년이 가져다주는 설움과 고통은 오죽했겠는가? 이런 문화에서 그 한(恨)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한 것이 우리의 판소리이며 민요가 아닌가 한다.

그럼 아리랑과 쓰리랑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마음이 몹시 아플 때 ‘아리고 쓰리다’는 말을 한다. 아리랑과 쓰리랑은 마치 소금을 잔뜩 먹고 속이 쓰리고 아플 때처럼 가슴이 통증을 느끼는 그런 아픔이거나 자식이 병으로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때 느끼는 그런 고통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아리랑(아이고 아려)!~ 쓰리랑(아이고 쓰려)!~ 아라리(앓앓이병)가 났네~응응응(신음소리)~아라리(앓앓이병)가 났네~” 이런 의미가 아닐까? 곧 아라리는 ‘병을 앓다’에서 파생된 말로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우리민족은 이웃 외적들의 수많은 침탈과 지배를 받아왔다. 위로는 몽고와 여진을 비롯 당·명·청이 있었으며 아래로는 왜적들이 끊임없는 침략을 감행해 왔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전쟁과 약탈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민족의 한(恨)과 애환(哀歡)이 아리랑과 같은 애절한 민요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참으로 아리고 쓰린 아픔을 처절하게 절규하는 통곡(痛哭)의 노래이다. 결국 아리랑의 탄생의 근원지는 우리 민족의 혼(魂)이요 애절한 가슴이다. 따라서 어떠한 외세의 침략이나 간섭에서 자유로우려면 국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요즘 일본을 보지 않는가?

필자에겐 아리랑에 얽힌 일화가 하나 있다. 1979년 12월쯤으로 기억되는데 태국 방콕에서 제12차 WFB 세계불교도대회가 거행돼 대한불교청년회의장직을 맡고 있었던 터라 자연스럽게 한국불교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게 됐다. 행사 마지막 날에 리셉션파티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부르게 됐고 앵콜송으로 ‘도라지타령’을 덩실덩실 춤과 함께 국익(?)을 위해 노래 불렀다. 물론 세계 불교도들이 지켜보고 특히 태국의 국왕과 승왕이 지켜보는 자리여서 더욱 신명나게 용기를 내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의 민요 ‘아리랑’이 태국에까지 그렇게 널리 알려진 줄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아리랑을 따라 불렀고 결국 앵콜송으로 ‘도라지타령’까지 불렀던 것이다.

그때 또 하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물끄럼이 지켜보던 승왕(僧王)께서 나를 당신의 법좌에 오라 하더니 “그대에게 귀한 선물로 우리 승왕청에서 모시고 있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몇과 줄터이니 한국에 가서 탑에 봉안하고 많은 이들에게 전법포교하라”하고 당부말씀과 진신사리가 봉안된 칠보사리함을 하사하시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꿈같은 일이었다. 나는 귀국 후 전국 주요사찰을 순방하며 진신사리친견법회를 열었으며 쌍계사 칠불암과 서울 법륜사, 무안 법천사, 그리고 화순 호남사 등에 사리를 봉안토록 기증을 했다.

아리랑은 내게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기연(奇緣)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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