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6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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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생명의 땅, 몽골
박준수의 청담직필

  • 입력날짜 : 2019. 09.02. 19:14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인 올해 여름 해외 역사탐방이 붐을 이루었다. 특히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중국, 몽골, 러시아 지역 항일역사 유적을 찾는 발길이 부쩍 많아졌다. 필자도 지난 8월 여름휴가 기간 3박4일 일정으로 징기스칸의 피가 흐르는 몽골의 역사와 문명을 만나보았다.

몽골은 국토면적으로는 한반도의 7배이지만 인구는 300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50만명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다. 환율은 2.2대1 비율로 한국 원화가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국가재정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도로, 상하수도 같은 도시 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비가 오면 도로사정이 좋지 못하다.

첫 방문지는 울란바타르 시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이승 전망대였다. 수백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높다란 기념탑이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념하고자 세운 것이라고 한다. 몽골은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를 도와 독일·일본과 싸웠다. 탑 주변 원형 벽화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자이크로 구성해 이해를 돕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가지는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이 빌딩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외곽에 빼곡이 자리한 게르 형태의 서민주택과 화력발전소에서 쉼없이 내뿜는 하얀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전망대가 등지고 있는 산등성이에는 약간의 침엽수림과 초원이 어우러져 알프스산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산자락에는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서 있고 몇몇 건물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몽골은 재정난을 겪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 등 민간자본을 중심으로 아파트와 호텔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몽골의 항일투사 이태준 선생



전망대 관람을 마치고 인근에 위치한 항일독립투사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을 찾았다. 이 공원은 2001년 7월 한국정부가 이태준 선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공원으로 기념비와 묘지, 기념관, 팔각정 쉼터로 꾸며져 있다. 이 공원은 한국정부가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기념관에는 이태준 선생의 애국활동이 사진과 함께 잘 그려져 있다. 1883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이태준 열사는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몽골로 이주해 각종 질병 치료에 헌신하는 한편 몽골국왕 주치의로도 활동했다. 또 의열단원으로서 일제 타도를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나 1921년 일본군과 연결된 백계 러시아군에 의해 울란바타르에서 순국했다.

한일간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이태준 선생의 애국정신이 더욱 뜨겁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이튿날은 울란바타르로부터 차로 2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차창밖으로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초원에는 말과 소, 염소와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초원 언덕에 공동묘지가 나타난다. 하얀 비석의 행렬이 망자들이 잠든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몽골의 전통적인 장례 풍습은 매장인데 최근들어 화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불교국가답게 공동묘지에 커다란 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테를지국립공원에 다다르니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기암괴석으로는 거북이 바위와 오형제바위가 눈길을 끈다. 가이드는 이러한 다양한 기암괴석을 가리켜 “신의 놀이터였다”고 설명했다. 신이 바위로 형상을 만들며 놀다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재치있는 설명이 흥미로웠다. 하긴 신이 만물을 창조했으니 이 또한 신의 작품임에 틀림없는 이야기다.



‘신의 놀이터’ 기암괴석 장관



이어 초원의 밤을 지내기 위해 게르 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는 게 목적이다. 8월은 백야 현상으로 10시까지 태양빛이 남아 있으므로 보통 자정이 되어서야 뚜렷한 별을 볼 수 있다. 이윽고 자정이 되니 하늘이 온통 별천지이다. 북두칠성을 비롯 온갖 별자리들이 제각각 촉수를 높이고 지상을 내려다 본다. 여행자들은 별을 보면서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든다. 유년 시절 고향마을의 별을 생각하거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유성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있을 것이다.

다음날 새벽이 되어 게르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희미한 미명이 남아 있어 초원은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저 멀리 톨강이 하얀 속살을 비추며 흐르고 있다. 철조망 너머 안개와 햇살, 갈기를 세운 차가운 바람결이 뒤섞인 풍경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짓누른다. 여행은 그렇게 혼자서 경계를 넘는 것일까. 거친 생명의 땅, 끝없는 대초원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러 있다.

/주필 겸 자치연구소장


주필 겸 자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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